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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Nov 18. 2022

나는 흔들릴 준비가 되었다

이미 나를 만든 그림들과 함께 

이 특별한 여행기는 그림을 좇아 나를 사랑하기 위해 떠났던 45일 간의 방황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유년기에 시작된 그림과의 연애, 색과의 사랑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삼십여 년의 밥벌이를 그만 둔 이후 정신분석 관련 책을 읽으면서 이제야 진정 사람으로 생생히 사는 것 같은 기이한 기쁨의 날들을 누린 덕분에 가능했던 그림여행일 것입니다. 인간의 생겨먹음에 대해 알아갈수록 미리 좀 알았더라면 선생 노릇 더 잘 했을 거라고 방방 뜰 때, 그것은 앞으로 획득할 참자유에 대한 기대이자 확신 같았습니다. 객관성의 이름으로 나의 구조적 특성과 맞닥뜨리는 동시에 인간의 병리를 깨달으면서 터져나오는 놀라움은 대단했으니까요. 


자주 부끄러운 면모라고 생각했던 나의 어떤 특성이 떠받치고 있았던 불가해한 가능성에 닿게 되었을 때, 그것을 a라고 명명하며 심연으로 발견해 들어가는 과정은 아프고도 재미있었습니다. a는 주체로서의 ‘나’가 구성되는 근원적 틈이며 '나'가 출현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망과 창조로 길을 냄으로써 나를 나이게 하는가 하면 자주 왜곡과 오인을 일으켜 나일 수 없도록 하는 ‘무엇’을 가정하고 붙인 이름이 a입니다. 물론 자끄 라깡에게서 빌려 맘대로 변형한 것이지요. 자랑스럽게 여겼던 부분에 자양분을 제공하며 쩍 벌어져 있는 상처나 병리 역시 a 때문이라고 둘러대며 끌어안는 슬픔과 기쁨은 나를 뒤집어 엎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에 관한 모든 질문에 더듬더듬 답 아닌 답이라 할 것들을 a라는 이름으로 감탄하며 찾아 나갈 때 그것은 이분법적 인식론으로부터 나를 무처럼 뽑아내어 사물의 이면과 겹침, 그 양면성과 꼬임에 대한 동시적 사유로 나를 옮김으로써 개인과 인간 일반에 대한 이해를 넘어 인간의 모든 가능성과 잠재성에 대해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드러난 새로운 지평 위에서 삶으로서의 나 하나를 겨우, 조금, ‘제대로’, 알게 된 주관적 진리에 대한 자술서라 할 책이 『엄마 꽃밭은 내가 가꿀게요』입니다. 마치 옹알이처럼 완전하면서도 불투명한 독백 이후 아찔하고 신나던 동요가 멎으며 살 만하다 싶을 때, 깊은 평화를 느낄 때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화르르 피어올랐습니다. 나는 a를 찾아 더욱 흔들리기로 했습니다. 내가 생을 굴러갔던 방식 또는 나의 ‘생겨먹음'을 넘어 달리 조금 더 살아보기 위해 뿌리 뽑히기를 원했습니다. 나를 사로잡았던 그림들을 만나러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림은 은연중 감정의 쏠림과 휩쓸림으로 길을 내고 시선과 목소리를 흔드는 동시에 의식을 끊음으로써 a를 보게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참말을 주장하는 정동情動과 함께 a는 보이자마자 사라지겠지요. 자아가 거짓말을 준비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실패와 흔들림의 반복 없이는 잠시도 불가능한 만남이지만 나는 얼마든지 흔들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 프랑스 인문학의 도시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남의 여행에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비행기표를 아주 비싸게 사야했습니다. a 때문입니다. 스트라스부르 일대 알자스지방을 돌아본 뒤 취리히를 거쳐 롱샹성당에서 마무리되는 열흘, 일행과의 이 여정이 끝나면 혼자 파리에서 한 달 동안 나를 홀렸던 그림들을 천천히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여덟 살부터 나를 요동치게 했던 그림들, 나를 그리고 만든 그림과 화가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만날 때 눈앞의 그림은 또 다른 그림을 부르고 숨은 기억을 일으킬 테니까요. 가라앉는 유사성을 넘어 일어나는 빛의 차이와 묵은 의미를 발견하기를 바랐습니다. 


자석처럼 이끌리고 밀어내는 말과 가슴 사이에서 몹시 흔들릴 수 있기를. 

달라진 내 말을 발견하며 나도 몰랐던 나를 들으며 a와 깊이 만나기를! 

미술관마다 그림마다 퍼렇게 아프기를. 고수들의 순간적이고 격렬한 일합 후의 적막 같은 몸서리치는 재채기를 일으키고 그저 주저앉을지라도. 마치 사막에서 홀로 섰을 때 그러하듯이. 사막 한복판, 발밑에서부터 훑어 오르는 꼿꼿한 한줄기 공포이자 무한과 대치하는 상태, 포위된 응시를 뚫어내고 통과하기를. 마침내 불필요한 습기를 알맞게 말리는 시간, 드높이 메마른 시간이기를.  

    

이 여정은 오베르, 런던과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니 함께 가십시다. 남의 삶을 통하지 않고 나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  사막 한가운데 섰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 그리고 희망을 가로막는 것은 인위적이건 또는 천연의 장애물이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멸에 대한 명상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한과 대치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무한은 실로 발밑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신과 조우하게 되면 사람은 이미 신을 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호메트 평전』 도서출판초당. 21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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