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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Nov 19. 2022

달아나기, a를 찾아서

나는 샤갈을 그린다

갈치조림을 하려고 깎아놓은 감자를 썰던 어느 날, 새로 산 부엌칼에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그 자랑스러운 칼의 단호한 배신과 서늘한 공포를 어찌 잊을까. 칼날에 달라붙은 감자는 떼어내기도 어려웠다. 마치 이질성을 모르고 받아들인 살처럼. 고작 2밀리미터에 피 서너 방울인데 세상이 멈춘 듯했다. 물론 a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보다 덜 무섭거나 가끔은 아무렇지도 않다. 괜찮다고 혼잣말하며 엄살도 덜 부린다. a의 정체를 인식할수록 그것에 덜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나도 할 수 있다. 장갑 낀 손으로 뒤쪽에서 상체를 압박하며 껴안는 동시에 목의 정맥을 찌르는 거다. 찌르면서 곧장 가로로 당겨야 한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다. 간단하고 말끔하다. 칼이라면 나도 서너 종류를 30년 넘게 다루어 보았으니 알맞은 과도를 택하여 잘 갈기만 하면 되는 거다. 

살덩이를 가르는 칼의 저항 없는 매끄러움! 살아있는 몸을 헤집고 관통하는 총알의 폭발적 이물감! 맥없이 자빠지는 육체의 허약한 물질성이 레이저처럼 쩌릿 내게 돌아와 나를 찢음과 동시에 정렬시키는 미친 희열! 이제 그것이 아주 조금 겨냥되는 바, 목숨을 애걸하는 자의 무력함과 맞닥뜨리며 분출되는 엄청난 통제감과 지배감, 그 괴력을 느껴보고 싶다. 해일처럼 몸을 휩쓸어 존재를 뒤흔드는 악마성을 나도 경험해 보고 싶다. 

     

의학·범죄 드라마를 3년이나 보았으니 실행할 때다. 총을 구할 수만 있다면 백발백중의 자신감조차 등등하다. 깨알 같은 피에도 오그라들며 죽음을 경험하던 겁쟁이는 이제 영원히 없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근데 누구를 죽여야 하나. 무엇부터 죽인단 말인가. a! 

사람을 죽이다니! 영화에서조차 눈을 가렸는데. 칼이나 총만이 아니라 살인은 애초에 상상불가,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의 인격조차 의심했는데. 왜 그랬던가, 왜 실실 즐기지 못했던가. 도구로써 재미는 취하지 못하고 오직 무기,의 공포에 떨기만 했으니! a 때문이다. 진정 유일한 내 것, a를 찾아서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탄다.   

   

하늘에서 잘 먹은 쌈밥, 행복감의 여운이 꽤 길다. 한 쌈만 더 먹고 싶은 아쉬움이 충만감을 완성한 모양이다. 현재의 나를 유지하게 만드는 환상 보존료 행복, 점점 의무가 되어가고 있는 그것. 자주 변화에 대한 방어약이 되기도 하지만 행복은 살맛을 돋우는 알약임에 틀림없다. 부디 의료화되지는 않기를. 비행기는 잘 날고 있다. 싱거운 커피 한 모금에 행복감을 부풀리며 피어나는 구름을 본다. 희망으로 튀겨져 거대한 팝콘이 되어가는 뭉게구름을 옆으로 밀어놓고 나는 샤갈을 그린다, 샤갈풍의 그림을 흉내낸다. 시퍼런 밤하늘에 별과 달이 주렁주렁 열리더니 아a,아a,아a 노래한다. 과도를 든 내가 웃으며 힘차게 날아오르자 우리 강아지 소리와 뽕띠가 바이올린을 켜고 나팔을 불며 뛰어온다. 깎던 과일들도 연 처럼 꼬리 달고 하늘에 매달린다. 남편은 모두 어디들 가느냐고 강아지 간식을 들고 쫒아온다. 꽃다발도 들었다. 행복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a 덕분이다. 



 당신이 어떤 예술작품에 송두리째 마음을 빼앗기는 ‘아름다워!’의 순간, 누구나 자기처럼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고 동의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미적 쾌락에 사로잡히는 순간 호출되는 것이 교양이 아니라 바로 인간성, 회복된 인간본성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가 그런 아름다움에 무감각한 것을 참을 수 없는 이유다. 강렬한 미적감동은 하나같이 상대주의ㅡ타인의 나와 다른 점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위장한 타인에 대한 무관심ㅡ에서 벗어나라는 권유다. 

   ‘아름다워!’는 일종의 초대다. 우리는 은연중에 동의를 구하면서 타인을 우리의 감성 깊숙한 곳으로 초대한다. 모든 미적 감동은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가능성을 넌지시 제시한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도 미적감동의 순간에는 타인과 함께하는 삶의 온기를 느낀다. (샤를 페팽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때』 양혜진 옮김. 이숲. 40-46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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