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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Nov 20. 2022

세상의 모든 그림

스트라스부르의 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스트라스부르로 간다

심장은 뛰고 위장에는 나비가 퍼덕인다

한밤 어둠을 좇아 빛을 문지르며 달리는 길 

심호흡으로 조용히 나비를 날려 보낸다     


깊은 밤 숙소에서 내다보는 바깥은 회화다 

창문마다 새는 빛, 가로등에 반짝이는 잎새들이 

어둠을 가르며 주고받는 붓질 같다 

베르메르의 렘브란트의 화폭이며

밀레의 모네의 피사로와 쇠라의 붓 

초록을 숨긴 노랑으로 보드랍고 

다사로운 양감이 녹아 미끄러지니 

르누아르며 발라동이며 드가 

뷔야르, 보나르이기도 하다      


멀리 자동차 불빛과 경적이  

말소리와 함께 그것들을 건드리자 

피카소 같고 클레 같고 뒤피 같다 

믿음직한 밤의 호명으로 고야가 되고 

고갱이 되고 루소가 된다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에 수틴으로 흔들리고 

베이컨이 되었다가 달리가 되고 마그리트가 된다 

가만히 기쁘다      


내 자리로 와서 눕는다

아기처럼 평화로이 코 골며 잠든 Y

낮게 걀걀 흥얼거리듯 커지는가 하면 

곧 멈춰 시치미를 떼고 다시 갸르릉, 노래 같다

요람에 잠든 모리조의 아기를 천정에 그리다가

다시 창밖이 궁금해져 얼른 일어난다.     


과연 밤은 낮보다 더 생생히 살아있다 

정말 색채가 풍요롭지 않느냐고 고흐가 속삭인다

빛을 품은 채 밀어놓았으나 밝은 어둠의 거리 

오가고 머무는 발길과 목소리의 동그라미들 

시어詩語처럼 연결되는 마티스와 샤갈을 따라 

사람들의 꼬리를 밟으며 걷고 싶다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며 바라보는 동안 

어느새 풍경은 프리드리히의 바다가 되고 터너가 되더니 

순식간에 몬드리안의, 칸딘스키의 화폭으로 바뀐다 

인간이 직조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는 없는가, 없는 것 같다 

유한 안에서 무한하다      


침대로 오다가 뒤돌아보았을 때 그건

세잔인가 싶더니 그냥 풍경이 되고 만다 

언제 어디든 있어 나를 숨 쉬게 하고 

우리를 살게 하는 커다란 여백, 공간이 되어 있다 

순한 사람들의 세상 우리의 화폭

나는 마리 로랑생의 분홍이 되어 잠을 그리고 싶다 

고흐의 붉은 포도밭에서 가져온 알 같은 태양을 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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