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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Nov 22. 2022

조난과 표류의 시작

 칸딘스키가 꽃잎처럼 떨어지던 날

 - <음악실> 바실리 칸딘스키.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길의 도시’ 스트라스부르 

나를 만든 그림 찾아 표류하는 여행의 시작 스트라스부르

미끄러지듯 흐르는가 하면 

우아하게 멈추는 소리, 스트라스부르

자꾸 소리 내고 싶은 이름 스트라스부르에서

칸딘스키의 방을 만난다

1931년 독일건축전을 위해 만든

칸딘스키의 <음악실>에 들어간다   

  

세라믹 타일로 제작된 삼면 벽에

음표 같고 악보 같고 연주 같으며

기하학 시간 같은 칸딘스키가 있다                          

음악실에는 물론 피아노가 있다

건반들은 벽에서 다른 악기와 함께

점·선·면으로 선율을 만든다

청각과 시각, 음악과 색을 동시에 만난다

배제와 압축, 단순과 추상을 몰라도 수긍하고 만다

높은 곳에 올려놓은 뒤 다시는 찾을 수 없던

칸딘스키가 꽃잎처럼 떨어지는 날!     


알 수 없는 악보들을 읽고 싶다 

그랜드 피아노를 치고 싶다

향기 속에 외롭고 둔탁한 울림

엷게 부서지며 가만히 열리는 소리

나는 새로운 걸 더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

움직일 수 있으려나 보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어떤 음악도 어떤 색도

나를 흔들지 못한다, 아직

무슨 생각이라 할 수는 없으나 감지되는 움직임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의 자리바꿈

알 수 없고 볼 수 없으며

알고 싶으나 사유 불가능한 의미의 미세한 이동

나도 몰래 간절했던

어떤 새로움 혹은 다름으로 연결되는 것들

그건 폭풍우다

조난과 표류의 시작일 수 있다

나는 몹시 흔들릴 준비가 된 것 같다     


                                                                                                                                          

● 색은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다. 색은 피아노의 건반이요, 눈은 줄을 때리는 망치요, 영혼은 여러 개의 선율을 가진 피아노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영혼에 진동을 일으키는 목적에 적합하도록 이렇게 저렇게 건반을 두드리는 손과 같다. 그러므로 색의 조화는 오직 인간의 영혼을 합목적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법칙에 근거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이것은 내적 필연성의 원칙을 나타내고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권영필역. 열화당미술책방. 61-62ㅉ)



음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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