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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Nov 23. 2022

내 생에 알맞은 무게

깜짝 놀랐지?

이젠하임 제단화 <그리스도의 부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뤼네발트. 

           콜마르 운터린덴Unterlinden 박물관     


운터린덴, 보리수 아래...

석가모니의 집이었던 보리수는 세상 사람 모두의 집이니 

겹치는 표상은 다른 의미를 불러내고

오늘 나는 그 집에서 예수를 만난다

그뤼네발트의 명성이 묵직한 이젠하임 제단화.


이 그림이 콜마르에 있는 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신성 없는 그 예수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중학생 눈에 늙고 전혀 거룩하지 않았던 그 예수

예수 따라 웃고 싶었음에도 웃지 못하게 나를 옭아맸던 그림      


짜잔~~! 아이들 장난처럼 

관에서 벌떡 솟아오른 예수는 

양손바닥을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신성을 잃은 듯한 급격한 배반감 

희화화되는 고통, 기쁨을 밀어내는 비웃음 

손발의 못구멍에서 나는 광채는 여전히 장난 같다 

서커스용 불고리 같이 커다란 광배에 이글대는 불꽃 

놀라 자빠지고 고꾸라진 로마 군인들의 꼴도... ㅎ흐흐 

드디어 웃음이 나온다. 히히 기쁘다

하하하 부활, 정말 맘껏 웃어야겠구나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림도 볼 수 있겠다

뒤틀린 손발, 채찍과 가시의 상처가 몹시 촘촘하다

생명을 예감할 습기 한 점도 없는 몸

절망뿐인 육신의 비천함, 죽어도 너무 죽었다 

그래서 부활은 만화보다 더 극적이다, 있을 수 없음!

작고 똥그란 눈동자 한가득 빙글 웃음

장난꾸러기 할배 같은 예수가 말한다 

깜짝 놀랐지?

진정 부활이며 대단한 변용!

놀랐다, 1500년 초의 그림이라니 정말 놀랍다 


찬찬히 볼수록 기쁨이 우러나고 마음이 놓인다 

햇살처럼 번져오는 가능성에 등이 가벼워진다

활짝 웃음도 열리고 손발이 움직인다

도상처럼 고정된 성스러운 이미지는 

실로 변용이 어려움을 깨닫는다 

눈앞이 훤해진다 어깨를 편다, 새로운 시작     


국기하강식 때마다 꼿꼿이 선 채로 울컥 가슴이 뛰던 중학생

그때 나는 진지하고 싶었던가 보다

내 생에 알맞은 무게가 필요했던 때였나 보다

나를 직조하기 위해 그 틀과 무게를 가져야 했던 거다

부수기 위해서 먼저 세워야 하는 생의 기둥!

  

콜마르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들렀다. 1871년부터 1918년까지 그것은 독일대학교였고 이차대전 동안도 독일의 점령하에 있었다. 괴테가 1771년 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파스퇴르가 교수로 재직했으며 슈바이처도 여기서 의학을 공부했다. 슈바이처의 삶은 병리적 자기희생을 넘어 윤리적 선택이자 생산적 욕망의 표현으로서 봉사와 헌신의 개념을 내게 확장시켜 주었다. 아서 프랭크는 『몸의 증언 The Wounded Storyteller』(최은경 옮김. 갈무리)에서 ‘욕망이 성찰적으로 되어갈수록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에 대해 책임이 증대된다.(100ㅉ)’고 말한다. ‘고통의 공동체는 다른 몸을 위해 몸이 되고자’하며 ‘자신에 대한 사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아픔을 공유하는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101ㅉ)’는 것이다.   

   

인간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해석할 수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는 존재론적 악을 포함한 채로 제 한계 안에서 애쓰는 존재자들은 아름답다. 도시를 누비는 운하 같은 강물을 따라 흐르는 건물들은 낮고 조화로운 입체감과 색조로 완성되어 있다. 길을 찾아 나도 흐른다. 너그러운 포도밭이 품은 길을 그리며 보금자리에 든다.

◀그리스도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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