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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Nov 29. 2022

발효의 시간이 참으로 더디고

존재할 수 있는 힘

-<만종><이삭 줍는 여인들> 장 프랑수아즈 밀레.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잔 밑에서 바느질하는 여인> 장 프랑수아즈 밀레. 뉴욕 프릭컬렉션     


왜 저리도 경건히 기도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감사한 걸까 

저토록 힘들게 일하면서 왜 이다지도 편안하고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이는 걸까     


국가적 정체성이라 부를만한 가난을 겪던 시절

자주 가게나 이발소에서 보게 되던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

여덟 살짜리는 그림 속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래 아팠던 아이의 몸에 기억된 고통 위에서 만났기 때문일까

내 안의 이질성으로 꿀꺽 삼켰을 뿐

차이와 다름을 넘어선 동질성에 닿을 수 없었다 

한국 사람에게 그것은 간절한 기도였던 것을 몰랐다

넉넉한 밥을 빌며 얼마나 쉼 없이 일하고 또 일했던가

그렇게 가난한 땅 위에 심어진 밀레와 그의 인물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내어주기까지 나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빈곤에 노동의 무게와 체념을 얹은   

기묘한 거부감과 함께 계속되는 매혹

아이가 아득히 품어왔던 그리움과 감사가 

그리도 깊은 줄 알 길이 없었다 

엄숙이나 경건의 후광과 함께 평생의 지지대였음을 

나를 쓰다듬고 기대게 해주었던 품이었음을 몰랐다 

발효의 시간이 참으로 더디고 오래 걸렸음이다     


그런 시간성을 입고 지금 밀레를 본다 

밀레의 일하는 사람, 건강하고 순한 사람들을 본다 

몰두와 전념, 하는 일에 스며들어 온전히 머물기 

삶을 자아내는 슬픔 너머로 자르르 솟는 감탄 

실행되고 완성되는 삶들이 보인다

존재할 수 있는 힘을 본다     


땅의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만큼 산다 

첫걸음마처럼 사무치게 소중한 생의 한 점  

복잡함을 주름처럼 접어 품은 단순함 

뿜어 나오는 기쁨, 마르지 않는 샘물 

생명 가진 것들과 온기를 나누고 목소리를 들으며 

보다 큰 존재에 감사하며 안길 줄 안다 

마루바닥인 동시에 산마루

스스로 낮춤으로써 절로 높은 삶을 담는다

인간 예수의 삶을 닮는다      


종소리처럼 부서져 내리는 

등잔불 빛 속에 잠든 아이  

옆에서 바느질하는 여인

정밀한 고요와 평화로운 몰두가 

황금비 되어 적실 때 

빛 속으로 부서지던 몸-물질, 심장만이 팔딱였어 

나,같다 싶은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느낌


무게를 지니고도 몸은 얼마나 가벼울 수 있는지

열흘 단식 후 반 공기 미음을 비웠을 때처럼

모든 가치와 의미를 일시에 털어낸 존재의 무게

피어나는 기쁨, 머금은 미소는 

한 하늘이 수천 년 엮은 것이지 

사람이 지은 게 아니던 것을.     


대단한 의미나 가진 듯 복잡해 보일 뿐인 

우리의 삶을 잠시 멈추고 내 안의 말을 들으라는     

자신의 샘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라는 밀레

영혼이 형체를 얻는 듯 눈앞이 훤해진다

겨울 정원에 꽃이 핀다

두근두근 환희의 봄을 산다      


2010년, 프릭컬렉션에서 흐르던 눈물의 뜨거움, 오직 밀레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 뉴욕에 온 듯했다. 지금을 중단하고 떠난 여행길에 나를 깊이 건드린 침묵이었다. 세상의 모든 잠과 평화를 불러들이는 <민들레>, <떡갈나무 숲 그늘에서 잠든 양치기 소녀>에는 창조 이전의 쉼이 있다. 온전히 새롭고 순수한 장소에 대해 유추 가능한 순간이 열릴 듯, 현실을 뚫고 들어오는 환각적 진공 같은 절대 고요의 순간을 느끼게 한다. 경부고속도로 상행 톨게이트 30여 미터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멈춘 차 옆에 망연히 섰을 때처럼. 나뒹구는 범퍼를 바라보고 있는 내 방향으로 달려오다가 좌우로 갈라지던 수많은 차들은 마치 성운 같았다. 봉헌물을 싣고 영주인 내게 경배하러 오는 신하들 같았다. 두 손 들어올리며 ‘어서 오시오. 경들!’ 했더라면 정신병자의 망상이다. ‘같았다’였기에 쉽잖은 환각 경험이 가능했다. 실재의 침입, a가 어떻게 현실의 틈을 찢고 나타날 수 있는지, 일상적 환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조금 맛본 거였다. 어떤 이미지와의 밀고당김에서 나를 관통하는 번개 같은 조우.   

   

자신의 진리에 이르는 길의 시작은 항상 낯섦과 기묘함 가운데 떼어낼 수 없는 친밀함으로 출몰하는 것들과 함께다. 부정하고 밀어놓았는가 하면 언뜻언뜻 보이고 종종 그것의 안부가 궁금하기까지 하여 화들짝 나를 놀래키는 것. 기시감과 함께 오면서도 낯선 것.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나이자 타자와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정동.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 그것은 반항이나 거부나 거절, 회피로, 각자의 증상으로 설핏 쪼개듯 드러나되 종종 섬뜩한 내것, 나만의 진실.      


◀등잔 밑에서 바느질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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