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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Nov 30. 2022

저리도 쓸데없이 아름다우랴

말을 품고 기다리는 침묵

- <복숭아>, <광대옷을 입은 끌로드>  오귀스트 르누아르. 파리 오랑주리미술관      

    

피아노 치는 소녀들, 복숭아와 딸기, 튤립 

보드랍고 따스하다 모든 경계가 풀린다 

색도 이렇게 응축될 수 있는 걸까 

아궁이 장작불 같은 주홍 빛깔 옷을 입은 아이

진노랑을 숨기지 못하는 주홍은                               

이름만큼 빨강을 더한다 

부딪침 없이 미끄러지는 색과 선 

쉴 새 없는 화가의 애무에 피가 도는 화폭 

기쁨을 뿜으며 우리를 온전하게 한다     


예쁜 것들이 주는 기쁨이 걸음마다 전해 온다 

아름다운 것들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하며 

그것이 곧 쓸모이니 

그렇게 제 삶을 산다 

몹시도 아름다우나 전혀 쓸모없이*      

마치 자식처럼 


어릴 적 재롱과 웃음, 감사와 기쁨만으로 

받은 것이 차고 넘치는데 뭘 더 바랄까 

아이는 나의 연장이 아니며 분신도 아니다 

내게서 떨어져 나가야 

영원히 아름다운 최고의 선물인 아이들

어쩌면 저리도 

저리도 쓸데없이 아름다우랴

가만히 지켜보며 아픈 듯 기쁘다     


소소한 순간의 영원성으로 우리를 이끄는 

격려이며 마르지 않을 위로, 르누아르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받는 자리에 놓아준다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소중히 안아준다                           

너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속삭인다 

아름다움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지 

아름다움이 왜 우리를 숨쉬게 하는지 

생명의 특권은 눈물겹게 지속된다      


불가능한 순수를 박제시키고 싶은 곳 

시간의 주름을 망각하는 순정하고 강렬한 공간

나는 색이라는 이름을 가진 빛의 중독자

진짜 빛은 밖에 있거나 밖에만 있을지도 모르지만 

감각하는 기쁨은 살아있음 혹은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 

빛은 입자이며 파동인 물질의 움직임이니

나는 움직이고 싶다 이제

즐겁게 견디는 나를 만들고 싶다 

견디는 줄 알면서 견디는 자의 아름다움

그들의 색은 숨:이다     


그림은 우리를 침묵하게 돕는구나 시작은 수동적이라도 능동으로 옮아가 내면 깊숙이 접촉하게 하는구나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말하기 위해 말을 품고 기다리는 것이로구나 우리가 미술관에서 침묵하는 이유를 잘 알겠다 숨은 나를 만나러 미술관을 간다 침묵 속에 생각은 말이 되어 노래하며 묻는다 내게 말을 걸고 나를 듣는다 진실과 만나는 기도가 된다 색채와 형상을 통해 나를 건드리며 다가오는 말을 붙잡는다 그건 다시 내게 들어 나를 만든다


                              

*미를 즐기는 것은 감각을 가볍게 도취시키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 미 자체는 두드러진 쓸모가 전혀 없다.(프로이트 『문명속의 불만』 김석희옮김. 2011. 열린책들. 256ㅉ) 


◀광대옷을 입은 끌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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