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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01. 2022

곁에 있음이 당연하지 않음을

사람의 빛에 젖는다

 -<수련연작, 에두아르 모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

 -<배짱이가 이슬을 마시다> 심사정. 서울 간송미술관     


미술관 앞, 나무 아래서 콩코드광장을 바라본다

에펠탑과 뛸르리 공원을 가로지르는 발길들을 본다 

철제의자가 매우 따뜻해졌다 미술관이 문을 연다

식물원이었던 이곳, 모네의 비밀의 화원이 열린다


연결된 두 개의 타원형 전시관이 일으키는 은은한 회오리 

빛 가운데 물의 표면을 간질이는 버드나무의 장난질

모네의 연못가에서 찰박거리며 노는 아이가 되어 본다 

요리 보고 조리 보며 두 개의 방을 드나든다 재밌다    

  

모네의 방에서 어제보다 더 꿈꾼다 깊이 젖는다 

빛을 그렸으나 빛이라고 불리는 어떤 순간일 뿐

끝내 빛을 그린 것도 아닌 건 아닐까 하며 빛 속에 잠긴다

잡을 수 없는 찰나를 붙들어 앉힌 사람의 빛에 젖는다     


지하의 폴 기욤 컬렉션은 오늘 더욱 따스하다 

안목과 돈을 가졌으며 쓸 줄도 아는 이들 덕분에

르누아르의 기쁨에 다시 휩쓸리며 수틴을 만난다

로랑생의 분홍에 환호하며 드랭의 삐에로를 본다

작은 미술관의 아늑함과 위로는 농밀하니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서럽지 않으리라     


오늘은 전형필 선생이 떠오르며 저릿해진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훈민정음>, <몽유도원도>...

우리의 것이 우리 곁에 있음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취향과 재미로 수집한 뒤에 기증한 문화재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만든 법을 공부하고 

변호하는 일에 갈등하던 젊은 전형필이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었기에 가능했다     


결심으로만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오세창선생의 말대로 ‘재물도 있어야 하고 

안목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오랜 인내와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 한다* 

간송은 미감과 감식안을 기르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밀림에 길을 냈으니 

1938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 개인박물관 

보화각이 지금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이다


비탈진 산자락 입구로 올라서면서 마주하는 

사자의 포효가 만든 긴장은 뜨락에 있는

한 쌍 선량한 호랑이를 마주하며 녹는다 

미술관 건물과 더불어 우거진 나무며 화초마다 

시간과 마음과 애씀이 아프게 서리는 장소

<원추리와 벌과 나비>가 노니는 사이 

배짱이가 이슬을 마신다 

정말 이슬을 마시는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 함은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새긴다 

예술품 낱낱에 대한 세간의 정평이나 

잡다한 정보는 도리어 아는 만큼 놓칠 수 있다 

내 마음을 듣고 말을 주우며 

깊이 흔들릴 기회를 자주 날린다 

조용히 오래 보고 여러 번 본다      


마침 기획전시실에는 ‘도쿄 인 파리전’이 열리고 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일본은 문화로 있고 

그때마다 시기심은 버릇처럼 달려오니 

남에게 의존하여 정체성을 확인하는 꼴이다

반갑다 나의 역사와 함께 출몰하는 a들

깊은 곳에 접촉하는 드높이 고독한 날들      


                                                      

*이충렬 『간송 전형필』 김영사. 72ㅉ     


                                                                  

◀배짱이가 이슬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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