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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02. 2022

희망, 하품만한 숨표

아름다움을 통하지 않고는

   - <다림질하는 여인들> 에드가 드가. 오르세미술관

   - <센강의 세탁부> 오노레 도미에. 오르세미술관

   - <세탁부> 뚤루즈 로트렉. 오르세미술관

   - <다림질하는 여인파블로 피카소.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하품만이 떨어져 나와 귀엽게 기억된 그림이었다 

그림에서 떼어져 단독으로 기억되는 하품,이라니! 

참으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의 영원함이었다      


오늘 그 하품은 피곤을 뿜어내는 구멍으로 보인다

단순하고 지겨운 무한 반복의 거부 같은 체념

드가 특유의 부드러운 배경이라고 믿었던 것은 

세탁공장의 수증기와 열기, 여인들의 땀이다 

아름답다고 우기고 싶도록 알알이 아픈 시간 

포도주의 위로, 쓸쓸하나 짧고 강렬한 쉼 

눈가에 반짝이는 이슬, 하품은 끝났다      


도미에의 아낙네는 하품이 전염될 틈조차 없다 

해 떨어진 센강에서 빨래를 마치고 계단을 오른다 

잘 뭉친 빨래를 왼쪽에 끼고 

오른손은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엄마를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는 아이는 

짧은 다리를 힘껏 내밀어 계단을 딛는다

이제 막 왼발을 들어 올리려는 아이의 오른발 

그 작은 발바닥으로 쏠리는 힘 위에 

젖은 빨래뭉치의 무게가 얹히고 만다     


1860년대 센강의 세탁선에서 종일 일했다는 아낙네들 

1970년대 한국의 어머니와 언니, 누이들은 방적공장에서 

봉제공장에서 허리를 못 펴도록 낮은 천정 아래 

화장실도 눈치보며 재봉틀을 돌려야 했으니 

숨표 없는 빈곤의 역사를 남의 땅에서 복습한다      


무게를 가진 몸은 중력을 거스를 수 없고 

고통스런 육신은 외부세계를 갖지 못하지

몸에 갇힌 의식은 자신을 확장시킬 수 없지

몸이 편안해야 대상을 향해 열릴 수 있는 거야 

기쁨 없는 노동은 자신의 세계를 축소시키니 

로뜨렉의 세탁부 역시 하품만한 숨표도 없구나 

창문은 희망을 품게 하는 절망에 가깝네 

피카소의 회색 여인은 그림자가 되었으니 

재로 무너질까 날려갈까 조마조마 나는...     


세상을 다림질하는 여신의 모습인 줄 알았다

오직 환상만이 현실이자 현실적인 것 

환상이 없어지면 생생한 현실이 남는 게 아니라 

현실자체가 없어지는 것임을 몰랐던 때였지 

바랜 기록사진 같은 통증이 욱신거리지만

가능성으로 배태된 삶의 이면임을 알게 되었지


이제는 고통과 창조의 신이라고 뻥칠 수 있겠다 

고통이나 못남이란 것은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제 자리를 가진다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오직 부정되고 가려질 뿐이다 

인간을 가능케 하는 근원적 자리!


                                                                    

● 당신이 어떤 예술작품에 송두리째 마음을 빼앗기는 ‘아름다워!’의 순간, 누구나 자기처럼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고 동의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미적 쾌락에 사로잡히는 순간 호출되는 것이 교양이 아니라 바로 인간성, 회복된 인간본성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가 그런 아름다움에 무감각한 것을 참을 수 없는 이유다. 강렬한 미적감동은 하나같이 상대주의ㅡ타인의 나와 다른 점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위장한 타인에 대한 무관심ㅡ에서 벗어나라는 권유다. 

   ‘아름다워!’는 일종의 초대다. 우리는 은연중에 동의를 구하면서 타인을 우리의 감성 깊숙한 곳으로 초대한다. 모든 미적 감동은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가능성을 넌지시 제시한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도 미적감동의 순간에는 타인과 함께하는 삶의 온기를 느낀다. (샤를 페팽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때』 양혜진 옮김. 이숲. 40-46ㅉ)

                                                


<센강의 세탁부> 오노레 도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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