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이 Dec 03. 2022

이리 와 앉으세요

밥이 급해 보인다

   -<감은 눈> 1890. 오딜롱 르동. 파리 오르세미술관

   -<엠마오에서의 식사> 렘브란트. 루브르미술관       

   

토독. 토독. 빗소리 들리는 아침 찻물이 끓는다

반숙된 달걀은 황금이 흐르는 노란색 계열 

차 향기 오르니 구름도 흩어지고 바람이 난다 

흡족한 마음에 사르르 감기는 눈, 이상하다

왜  ‘감은 눈’은 늘 명상하는 예수로 기억되지? 

르동의 예수구나 하고 제목을 확인하면 감은 눈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완성되는 중인 존재

혹은 막 임종한 깨달은 자, 열반에 드는 부처  

단순한 평화, 능동성을 보류하고 

기꺼이 수동성에 머무는 힘

대지에 잠겨 창조를 준비하는 신일까

감은 눈은 깊이 보고 보이지 않는 걸 본다 

말없이 전하고 새로이 느끼게 한다 

어떤 이동과 폭발을 예감한다      


감은 눈으로 엠마오에서 식사하는 예수를 본다 

떴어도 감은 눈에 무력감 비치는 범상한 얼굴 

부활 직후, 육체성을 확고하게 갖지 못한 모습 

하늘을 향한 그의 눈빛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저 지친 순례자로 보일 뿐

부옇게 형성되고 있는 후광이라도 없다면 

이 배고픈 예수를 알아 볼 길이 없다 

밥으로 채울 몸이 아닐지라도 밥이 급해 보인다      


이리 와 앉으세요 

벌떡 일어나 의자를 밀어준다 

식탁을 치우고 바게뜨를 썬다 체리 세 개

예수님, 노른자 좋아하시나요 

커피도 좋아하시겠죠 

한국에서 가져온 에티오피아 커피랍니다

이상한가요, 당신은 어디에나 계신걸요     


렘브란트를 참조하지 않고 인간이나 신에 대해 말할 수 없음을 투둑, 깨닫는다. 렘브란트가 그린 예수 얼굴 그림들을 찾아본다. 베를린 슈타트리히 미술관에 있는 <예수인 유대 젊은이>만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단다.모두 엠마오의 예수와 비슷한 인상의 평이함에 맑고 온유하다. 능동적 수동성과 수정 같은 인내가 읽힌다. 성스러운 느낌이 비밀스럽게 배어난다. 헤이그 브레디우스 미술관 소장 <예수의 얼굴>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팔짱을 낀 듯하여 인간미가 더하다. 모든 표정을 가졌거나 하나도 갖지 않은 듯.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에 소장된 그의 <부활한 그리스도> 역시 평범에 가까운 얼굴이다. 타원형 그림의 한 중심에 있는 얼굴은 고귀함에 더하여 한 겹 분명한 신성을 입은 거룩함을 보인다. 죽음을 극복하고 피어나는 눈빛의 피로감.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예수의 얼굴>이 내 맘에 든다. 견고함과 유연함이 중첩된 얼굴로 입술을 열고 곧 무슨 말을 할 것 같아 몸을 기울이게 된다.     

  

벌떡 일어나서 활짝 열어놓은 창문들을 닫는다. 서쪽으로 드는 해가 뜨겁기도 하지만 응시를 느끼기 때문이다. 아기인 나를 바라보던 부모의 시선에서 비롯된 응시는 우리의 내면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작용한다. 응시에 포획당한 주체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것을 요구당하고 명령받지만 응시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a! 신의 이름으로 완강히 붙들린 응시라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순한 양이 될 수도 있다. 양은 제물이 되기도 한다. 끝없이 움직이며 소란 가운데 자신을 놓음으로써 벗어나고자 하지만 응시에서 놓여나기는 어렵다. 순수 게으름이나 고요로 그것과 맞장뜨기는 지난하다. 응시는 도처에 있고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의미화하거나 지배할 수 없는 응시의 기원이나 유령성을 인식함으로써만 보이지 않는 거미줄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a를 좇아 정밀한 가설통로를 밟는 일은 자괴감과 기쁨의 범벅이다. 분열된 자아들의 힘찬 씨름은 그동안 내 것인 줄 알았던 현실이라는 이름의 환상기둥을 손으로 만지듯 생생히 인식하도록 밀어붙인다. 경악과 분노, 쪽팔림과 희망으로 거듭 패대기쳐지는 일이다. 수십 년 지속된 개기일식이 끝났음을 명확히 인식할 때 그 안타까움, 자랑과 수용의 중층적 꼬임이 일으키는 쾌락과 새로운 가능성은 진정 내것이다. 그것은 감사로 바뀌면서 내 안에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이 된다. 유일한 내것.   

  

  

<감은 눈> 1890. 파리 오르세미술관


작가의 이전글 희망, 하품만한 숨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