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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Dec 04. 2022

멋진 신세계

우리는 모두 고양이다

   - <세상의 기원> 구스타브 쿠르베. 파리 오르세미술관

   - <흰 고양이피에르 보나르. 파리 오르세미술관     


신체 조각 하나가 떡 하니 걸려 있다 

여자 성기와 주변을 사진처럼 그렸다 

최소한의 은폐나 창조적 변형으로 

근원적 환상을 덮지 못하는 증상의 출현. 

관계나 상황, 맥락과 전체성으로 

해석의 여지가 있는 누드와는 다르다 


얼굴의 자리에 놓인 성기의 주이상스적 쾌락이 

도착증자에게 ‘세상의 기원’임은 맞다 

자신이 본다고 생각하는 대상은 

응시 속에 도착증자를 포섭하고 지배한다는 

성적 취향의 비밀에 대한 함축적 가르침!     


파편으로 응시만을 강요당하는 절단된 신체인 성기는

응시의 대상-사물이 되어 자신을 변호할 말을 박탈당한다  

결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성이 인간에게

자주 트라우마의 기원적 장소가 되는 까닭이다

‘별것’으로 선긋기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장소인 이유다

더욱이나 내가 지배해서는 안 되는 타자의 것이라면!     


하지만, 그래도, 이미 명화인걸, 표현의 자유인걸,

이제 더한 것들이 넘치며 막을 수도 없는걸...

딸꾹! 말을 삼키며 ‘편안’하게 보기를 요구당한다

노출과 관음의 장소로서 미술관은 에덴이다 

교양의 이름으로 맘껏 즐기는 헤테로토피아*      


마네의 올랭피아 검정고양이는 응시를 흡수한다               

보나르의 고양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

도도함과 우아함의 매혹은 장난기로 이끌린다 

발튀스의 고양이들은 성적 위험의 경고나 

대상과의 거리에 대한 달관처럼 보인다 

잃어버려야만 하는 유년기의 대체물 


우리는 모두 고양이다 

그리움으로만 만나야 하는 것                        

있는 줄도 모르면서 그리워 애태우는 것 

옆구리를 간지르는 영원한 비밀     


정신분석이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는 어떻게 인간 유아가 어머니와의 공생적 쾌락을 끊고 현실·문화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가라는 인류사적 질문에 프로이트가 발견한 답이며 고안한 개념이다. 정신분석은 바로 이 거세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주체의 성적태도가 결정된다고 본다.    

  

대부분의 꼬마주체는 거세를 긍정하면서 어머니와의 공생적 쾌락을 포기하고 타자성의 영역, 라깡이 명명한 상징계인 언어와 문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른바 금지를 받아들임으로써 일반 신경증자로 ‘정상적’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일부를 죽임으로써 기존의 질서와 의미체계에 포섭되는 셈이다. 라깡의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에서 나쁘거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상징질서로 들어가는데 실패하기, 즉 거세를 배재하고 정신병자가 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도착증자는 거세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어머니의 거세를 부인否認하면서 자신의 완전한 쾌락을 위한 은밀한 통로를 확보한다. <세상의 기원>은 그 일련의 환상 가운데 하나다. 여자의 몸 일부를 예술로, 초월적 지위로 드높였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부인否認은 도착적 주체의 진실이다. 현실 규범과 상식 너머, 위반의 짜릿한 쾌락을 강제할 뿐 ‘아무 문제도 없다’고 우기며 자신만의 법을 만든다.   

  

결국 인간됨의 시작은 포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근원적 쾌락을 포기하고 결여를 받아들이며 타자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성적 몰두에서 풀려난 에너지를 승화시키겠다는 다짐이자 창조 과정에 참여하며 서로 돕고 살겠다는 약속. 그것은 이미 기원적으로 주고받은 선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속은 깨질 수도 있는 것이니 어쩌랴. 각자 자신만의 증상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음은 휴머니즘과 물신으로 틀어막아도 샐 수밖에 없는 진리다.      


그렇다면 주체의 직접적 개입과 선택 이전에 건설된 신전을 부수고 싶지 않은가. 온전하다고 믿는 환상의 구조물을 흔들어 일부라도 다시 짓고 싶지 않은가. 옆구리 터진 김밥이나 뒤집어진 장갑,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내장은 욕하면서 집어던져도 좋지만 손봐야 할, 재활용하고 도와야 할 것들이다. 갖은 병리에도 불구하고 괴물로 머물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애쓰는 인간들이 멋지지 않은가. 신의 은총이고 기적이다. 셰익스피어는 오래 전에 노래했으니 그는 이조차 이미 알고 있었던가.   

  

오, 놀라워라!

수많은 훌륭한 피조물들!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 멋진 신세계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 Hétérotopies: 미셀 푸코. 현실에서 일종의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The Tempest』5막 1장) 

O wonder!/ How many goodly creatures are there here!/ How beauteous mankind is! 

O brave new world,/ That has such people in't.    

 

◀ <흰 고양이> 피에르 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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