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위에 검은 덩어리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전봇대에서 전봇대로 이어진 전선마다 까마귀들이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멀리서 보면 전선이 굵어진 것처럼 보였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들이 모두 살아 있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까마귀의 검은 깃은 밤에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그 수가 만들어내는 밀도만이 공기를 바꾸고 있었다.
그때 초록색 레이저 하나가 전선을 가로질렀다.
레이저가 닿자 까마귀 떼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날아올랐다. 전선에서 검은 것들이 한꺼번에 벗겨져 나가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은 마치 전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소리도 없이, 다만 갑작스럽게.
잠시 전선이 비었다.
그리고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사실 이 길은 늘 다니던 길이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아내를 마중 나가던 길. 집 앞에서 시작해 길게 뻗은 직선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정해진 지점에서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동네 길이었고,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기억하는 동선이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이 길의 인도는 늘 더러웠다.
차도 쪽 인도에는 새똥이 얼룩처럼 남아 있었고, 사람의 발자국보다 새들의 흔적이 더 또렷했다. 사람을 위한 길이라기보다는, 새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장소 같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새는 보이지 않았다. 흔적만 있고 원인은 없는 길. 그게 이 도로의 인상이었다.
이날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전선 위 까마귀들이 흩어지고 난 뒤, 길 끝에서 형광색 조끼를 입은 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전선을 올려다보며 다시 초록색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레이저는 위로 향했고, 사람을 겨냥하지 않았다. 까마귀를 향해 정확히, 반복적으로.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빵모자를 쓴 노인이었다. 일흔은 훌쩍 넘어 보였지만 걸음은 느리지 않았고, 레이저를 쥔 손도 흔들림이 없었다. 작업을 하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걸었다.
“까마귀 쫓으시는 건가요?”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잠깐의 정적 뒤에 그가 말했다.
“쫓는다기보다는요. 학습시키는 거죠.”
까마귀들은 똑똑해서, 불편한 장소라는 걸 알게 되면 다시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레이저를 쏘는 거라고 했다.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라, 여기는 쉬기 좋은 곳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거라고. 전선이 지하로 들어가지 않은 동네라 까마귀들이 모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렇게 매일 나와 작업을 한다고 덧붙였다.
말투는 설명이라기보다 습관처럼 흘러나왔다.
동네 주민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몰랐을 뿐이라고.
그는 계속 걸으며 말을 이었다.
전선 위는 천적이 접근하기 어렵고, 따뜻해서 새들이 모인다는 이야기. 정확한 근거는 모르지만 그렇게들 생각한다고 했다. 말끝은 늘 “아마”였다. 확신보다는 경험이 쌓인 사람의 말 같았다.
그제야 형광 조끼 뒤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수원시.’
이 일이 개인의 호기심이나 특이한 풍경이 아니라, 도시가 매일 반복해서 처리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또렷해졌다. 까마귀 떼는 우연이 아니었고, 레이저를 든 노인도 우연히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밤 9시까지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 말과 함께 우리는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인터뷰도, 대화도 아닌 짧은 동행이 그렇게 끝났다.
조금 더 걸어가자 아내가 보였다.
아내는 전선 위를 올려다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징그럽다고 했다. 나는 괜히 신이 나서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전부 말해주고 싶어졌다. 까마귀가 왜 모이는지, 레이저를 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매일 밤 누군가 이 길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아내는 반쯤 듣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까마귀들이 다시 모일지도 모를 전선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은 여전히 평범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냥 지나치는 길은 아니었다. 아무 일 없어 보이는 도시의 밤이 사실은 누군가의 반복된 손길로 유지되고 있다는 걸, 그날 이후로는 알고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