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먼저 갖춰져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해보았다.
내가 떠올린 것은 '자아존중', 그리고 적당한 정도의 '자기애'였다.
하지만 취업을 새로 준비하는 이 시기엔 자기애는 고사하고 자아존중도 갖추기가 어려운 것만 같다. 다들 장점이나 특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없는 것만 같고. 디자인이라는 나름의 기술을 보유한 특수직군에 경력을 갖고 있지만,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트렌드 속에서 혹여나 뒤처지는 것은 없을까- 조바심이 난다. 이제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보면 울컥하기까지 한다. 질투가 나서? 아니다. 부러워서다. '나는 이렇다 할 전문성도 없는데, 저 사람들은 저렇게 경력과 기술을 쌓았네. 공부 정말 많이 했구나. 와, 이렇게까지 노력하셨으니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폐에서부터 습기가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전문성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 더 그런 마음이 든다. 얼마 전, 골목길에 놓인 고물 피아노를 정말 맛깔나게 치며 멋진 연주를 하는 학생의 역상을 보았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지만, 그저 내 귀에는 모차르트 같고, 베토벤 같았다. 고급 피아노가 아니어도 그저 피아노 연주 자체를 즐기는 열정과 모습이 왜 그리 부러웠는지 모른다.
이렇다 하고 내놓을만한 재능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탓일까? 단지 취업 시장이 불안해서? 모호하지만 뚜렷하게 들리는 아무개들의 가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기 때문일까? SNS를 너무 많이 봐서?(요즘 너무 빠져들지 않기 위해 하루 90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아니었다. 그들이 부러워 울컥했던 것은 여전히 나는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체성이 점점 약해지고 있음을 나보다 마음이 먼저 감지했던 것이다.
'잘하고 있는 거 맞아?' '그렇게 하는 거 맞아?' '이렇게 하면 되는 거 맞아?' '이 선택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이 길로 쭉 갈 거야? 아니면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어?' 끊임없는 나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걷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나를 믿어준 적이 있었던가?
사실 크고 작은 실수를 매번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낮아진 탓도 있다. 마음이 어지러우니 생각도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보는 것도 대충 보게 되고, 대충 기억하곤 했었다. 혹은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마음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공간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더 심했다. 옆에서 누가 언지를 해줘야 그제야 "아. 맞네.." 하곤 속으로'또 이러네 나..'라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만 반복했었다. 그중에 분명 잘한 것들도 있었을 텐데, 잘 한 건 기억도 안 난다. 그저 못했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오면 내 안의 불신이 "어! 나 여기 있어!"하고 불쑥 튀어나온다. 그렇게 나는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믿는다는 게 꼭 예상대로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측면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예상했던 대로 가게 될지, 아니면 어긋날지는 알 수 없다. 실수나 실패를 예상하고 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나는 나를 ‘괜찮아, 해보는 거지!’하고 적당한 응원과 믿음을 주는 것이 필요했다. 실패하더라도, “괜찮아. 이만하길 다행이야.” 혹은 “좋아, 이 계기로 나는 뭘 배웠지?”하며 다음 단계로 빨리 치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어떨까. 그게 나를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자면, 내게 필요한 건 나 자신에 대한 예언적인 믿음이 아니다.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지고, 난처하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결국 해낼 거라는 믿음. 그 믿음에서 비론된 자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번에도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