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버거울 때가 있잖아요.
애정하는 다이어리로 일정을 관리하기 시작한지 5개월째.
먼슬리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는 나는 5개월차 다이어리를 회고하다가 깜짝 놀랐다.
월초에 끄적인 내용과 엊그제 부랴부랴 한 달의 마무리를 하겠답시고 급히 적은 내용이 전부였다.
'설마?'하고 이전의 다이어리를 열어보니, 아뿔싸. 나의 패턴이 발견됐다.
해야하는 건 알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해야하는 것들'로 가득 찬 일상이 꼴보기 싫었던 걸까?
이 시기에는 유독 방어기제도 민감하게 나타났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처럼 느껴져 이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애써 존재해야 한다는 게 버거웠고, 존재를 만든 존재도 원망스러워지는 그런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일정을 관리하는 다이어리를 쓰는 게 의미있을 리 없다.
다이어리 외면 기간은 영락없이 나의 우울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원하는 간식을 양껏 다 먹었으니 더 이상은 질려버려, 바라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는 것처럼.
나의 패턴의 이유를 나름 찾아보면 이랬다.
- 원하는 용량의 성취감을 얻었으니 짜게 식어버린다.
- 처음부터 힘을 너무 담아버리고 나니 더 이상 쓸 힘이 없어지는 것이다. 힘을 뺏겼다는 느낌에, 이제는 그 대상이나 활동이 싫어져버린다.
- 한 달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제는 쉬고싶다. 근데 이제 그 기간이 거의 활동기와 맞먹는 기간인 것..
이런 삶의 패턴을 보이는 당사자는 어떤 기분일까?
'그냥 할 수 있을 때 하고, 쉴 수 있을 때 쉬면 되지 않나?'하는 평안함일까?
그렇지 않다.
이 시기를 지나고 정신이 들고 의지가 약간 생겼을 때, 자괴감이 만만치 않다.
'나는 왜 이 모양이지?' '열심히 살면 뭐해? 어차피 또 허무함의 굴로 들어갈텐데.' '어차피 하다가 또 뒤처질텐데 의지가 생기면 뭐에 쓰나~' 무엇보다, 안정적이지 않은 자신의 패턴을 스스로 자각하면서 괴로움만 더해진다.
나와 비슷한 패턴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거라 믿는다.
문득 정신과 상담을 다시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감정의 조절은 생리현상과 같아서,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변이 마려워지는 걸 조절할 수 없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내 의지로, 내 생각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그 다음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상담을 가기로 했다.
주의력결핍에 의한 증상으로 콘서타를 복용했던 경험도 있었기에 정신과 약은 최후의 수단이지,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서, 2월의 시작은 나 스스로 강약조절을 해나가는 시간을 만드는 게 목표다.
초반에 뭐든 힘을 주어 나 스스로에게 기준을 높여버리니, 그 다음이 부담스러워진다는 것. 게다가 어느정도 만족한 결과를 처음부터 얻어버리니, 더 해보자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 패턴을 한 번 깨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단계에서 마무리해보는 거다.
'아, 이거만 쫌 더 하면..!'하는 욕구가 치솟을테지만, 일단 눌러본다. 그 다음, 또 한 차례 해야할 일을 하게 될 때도 절대 만족스럽게 하지 않는 것이다. 더 손을 보거나, 이 일에 심취해버리고 싶대도 억지로 끊어낸다. 이렇게 '의도된' 불만족을 통해 힘을 분산시켜보는 것이다.
지금 쓰는 글도 마찬가지다. 힘을 들이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글의 흐름이 부자연스럽진 않은지, 이상한 표현은 없는지 검토하며 만족하는 상태로 만들고 싶다. 그러나 이 글이 아마 나 자신과의 밀당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의도된 불만족으로 꾸준함과 안정성을 찾아갈 수 있을지.
한 번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