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밥이 있어도 숟가락을 뜨지 않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과거에 얽매이거나, 과거의 나 자신과 비교하며 심연으로 빠져드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때는 그렇게 잘했으면서, 지금은 대체 왜 이렇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 끊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한 때 열심히 살았던 영광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무엇에 이토록 허덕이고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게 된다. 그저 '그때'의 나를 상기하며 '지금'은 대체 뭐가 문제냐고 나를 다그치고 혼내는 모습만 남아있게 된다.
한 때 나는 스스로 자랑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출근 준비를 마친 다음 광역버스를 타고 서초역 인근에서 내린다. 7시 40분. 여기서부터 강남역과 교대역 사이에 있는 회사까지 걸어간다. 가끔 준비를 일찍 마치면 전철을 타고 방배역까지 간 다음 여기서 자전거를 대여하고 회사까지 자전거로 출근하기도 했다.
혹은 퇴사를 한 뒤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늘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7시에 일어나서 스트레칭, 신랑 출근길을 배웅해 준 뒤 조깅을 나가곤 했다. 그때는 루틴을 잘 잡고 있었기에 하루를 허투루 보내는 순간이 없었다. 하루가 뿌듯했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원망스러움도, 수치심도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고, 이 많은 걸 다 하려면 이번 생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지는 그런 순간도 있었다. 하고 싶은 건 망설이지 않고 시도해보기도 했고, 뭐든 부딪혀보았다. 그렇게 하고 나면 무엇이든 배웠고 얻어지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과거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일어나고 싶지 않아.'
하루를 또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과 거부감. 어차피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하루에 불과할 텐데,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이딴 삶을 왜 또 시작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괴롭기만 하던 순간. 어떻게든 살아내는 이 하루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기에 시작하기도 겁난다는 것.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듯 핸드폰을 켜고 스크롤을 내리며 어떻게든 내 눈과 귀에 다른 세상을 구겨 넣어 본다.
좀 더 멋지고 스스로 존경할만한 모습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과 어차피 이루지 못할 텐데 뭐 하러 애쓰냐고, 지금 이게 네 모습이라고 조롱하는 실망감 사이에서 나는 계속해서 후자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 보자고, 그래도 살아내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겨우 달래 가며 적었던 다이어리 일정들을 다시 보았다. 하나도 체크하지 않았던 그 일정들. 오늘 하기로 마음먹었던 일정들도 다시 보았다. 아침 요가와 묵상, 수업 준비와 운동.. 콘텐츠 제작.. 분명 모두 필요한 것들이었다. 해내면 정말 좋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이 일정들을 적었던 어제의 마음이 무색해지리만큼 다시 또 좌절하고 만 것이었다.
'그렇지. 하면 좋은 것들이기는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마음이 가지 않았을까? 왜 그저 먼발치서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어깨에 힘이 빠진 채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걸까?
하면 좋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건 아닐까? 이를테면 삶에 대한 의지 같은 것 말이다.
나를 아껴주는 애정과 하면 된다는 믿음, 그리고 이렇게 해나가면 된다는 격려.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마치 눈앞에 밥이 있어도 굳이 숟가락을 뜨지 않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밥이 아닌 것처럼.
나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과거의 잘했던 모습을 상기하며 '그땐 그렇게 했으면서. 지금은 왜 이래?'라고 다그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의 나는 삶의 동력이 없는 상태이니, 이걸 되찾아 충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맞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르다는 걸 일기를 쓰며 알게 됐다.
상황이 같다고 사람의 마음이 항상 같은 건 아니었다.
어두운 모습의 나를 마주했을 때,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과거 이력을 들이밀며 다그칠 게 아니라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들여다봄이었다.
나는 삶의 동력과 의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