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의 <소방관>을 보고
어제, 일요일의 일이다. 애들 아빠가 영화를 보러 가야 한다며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서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 놓고, 아이들에게 씻고 나갈 준비를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무슨 일인가? 이 시끄러운 탄핵 정국에 영화 보러 나가는 일에 저렇게 열성을 보일 일인가? 그렇지만 사람이 너무 이상한 일을 하면 불만을 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하게 된다.
“뭐 좋은 영화라도 나온 거야? 뭘 보고 싶은 거야?”
“응. 소방관이라는 영화인데, 동료들이 꼭 보래.”
아하. 이 분이 지금 가족들에게 자신의 고생을 참관시키고 싶은 거구나.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면서 작가라는 직업도 내면의 고뇌를 불타는 화재현장처럼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나는 만날 집에서 노는 사람 같이 보일 텐데.
아무튼 애들 아빠의 어깨뽕을 오랫만에 좀 부풀려 줄까 싶기도 했고, 탄핵 표결이 무산되고 침잠한 기분도 북돋울 겸 가족 모두 영화관 나들이를 갔다.
영화는 너무 올드했고 전반부는 지루해서 큰아이가 대놓고 잠을 자려다가 내게 딱 걸렸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아주 부드럽게 녀석의 정수리를 잡은 뒤에 얼굴을 화면 쪽으로 돌려주었다.
“계속 봐.”
짧고 나직하지만 단호한 속삭임.
내 어조를 느꼈는지 녀석이 눈에 힘을 주고 버티며 보았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너무 인간적이고 잔잔하고 슬픈 어조로 지난 사건의 트라우마 속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중한 가치들, 정의로운 개인들, 현실적 어려움과 신념 사이에서의 갈등들이 ‘대사’로만 전달되는 중이었다. ‘12세 관람가’는 12세가 되어야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표지인가? 그 전의 집중력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뜻인가? 괜히 애들을 데려왔나? 어른들끼리 올 걸 그랬나… 고민하던 찰나에 빌런이 등장했다.
빌런의 등장으로 영화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인간이란 그렇다. 평화시에는 진정한 가치에 대해 관심도 없다. 그러나 비상식적이고 엉망인 인간-그렇다. 상식 선 안에서 엉망이거나, 이해타산을 잘 따질 뿐인 덜 엉망인 인간 정도는 빌런도 아니다.-이 등장해야 비로소 긴장감이 생긴다. ‘앗. 이러다가 공기처럼 곁에 두던 것들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전투력을 불태우는 거다.
후반부는 스토리텔링 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스토리 업계에 직접 뛰어든 후에 나는 영화든 소설이든 순수한 재미를 느끼며 감상하지 못하게 되었기에 영화 <소방관>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히트를 치고 있다는 드라마 <정년이>조차 몰입을 못하고 계속 분석하며 보다가 그만두었다. 긴 길이의 드라마를 그런 식으로 분석하며 시청하기는 너무 피곤했다. 더 보다가는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았다. 그러니 <소방관>에 몰입할 거라고 예상도 안 했고, 그 예상은 맞았다.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만 따지자면 <소방관>은 성에 덜 차는 영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질감이나 형태가 완연히 ‘프로파간다’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므로 평가 기준이 달라야 한다. 영화는 목적한 용도에 맞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한국의 소방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좋은 영화였다. 마냥 소방관들의 의협심만 부각시키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아마도 실제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실제의 사건을 모티브 삼기로 결정한 최초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게 영화는 잘 마무리되어 있었다.
“이 영화는 극장 개봉 끝나고 나면 소방청에서 권리를 사들여 공개 상영회 같은 거 계속 해야 할 것 같은데?”
영화관을 나오며 끝발도 없는 말단 소방관에게 말단 소방관의 아내가 제의했고, 말단 소방관은 크게 동의했다. 우리의 결정을 윗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세상이 민주적이 되어서 일반 시민일지라도 윗분들께 직접 건의할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나서서 정 맞고 싶지 않은 소시민 부부는 방구석에서 소원 기도를 한다. 그리고 누군가 다른 정의로운 사람들을 한 무더기 만들어서 시스템을 움직여줄 거라 믿는다. 늘 그래 왔듯이. (그리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나서는 꼴이 우습잖아. 가오가 있지. 소방 밖에서 소방을 위한 예산 건의를 해줘야지. 너무 이상적인가?)
그런데 생각해 본다. 나라 예산으로 집행되는 영화 상영회를 꿈꾸는 일, 소시민이 행정부에 건의를 넣어주는 일, 이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향유하던 우리의 권리였구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 아무 일도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모든 게 소중하게 느껴져. 세상이 불만거리로 가득했는데, 사실은 감사할 것들로 가득했다는 것, 이제껏 나는 불만거리에만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그런 각성이 들었어.”
계엄 한 방에 깨달았던 것이다. 허망하게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는 것들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고 쉽게 누리며 살아왔구나.
나는 이 영화가 2001년도를 배경으로 한 것인지 모르고 갔다. 어제의 속 시끄러운 사태를 잊기 위해 기분 전환을 하러 간 거라 영화에 대한 정보도 조사해 보지 않고 덜렁 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기시감이 들었다. 남편은 2005년도부터 소방관 일을 해왔다. 게다가 극 중에서 소재로 다루는 ‘구조대원’으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2001년 홍제동 방화사건으로 인해 소방관 처우 개선 사업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처우들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 한 번에 확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감탄했던 것 중에 하나는 고증이 상당히 잘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남편은 2교대 근무를 했는데 24시간 근무 후 24시간 비번이었고 다시 24시간 근무였다. 그걸 ‘당비’ 근무제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아침 9시까지(사실상은 8시 반까지다)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9시에 퇴근했는데, 퇴근하면 피곤해서 한숨 자야 했다. 그러면 오전이 가고, 오후에 잠시 자유시간을 가지고는 저녁에는 ‘당연히’ 자야 한다. 로봇도 아니고 사람인데 해 저물면 자야지.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다시 출근이고…….
이렇게만 반복되어도 지금 생각하면 미친 근무환경인데, 비번 날이라고 다 쉬는 게 아니었다. '비번 활동'이라고 해서 다른 업무가 주어졌다. 학교나 단체에 심폐소생술 교육을 가거나 소방 홍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비번 활동자들이었다. 그 분들이 근무일에 나오시는 게 아니고(근무일에는 소방서에서 비상 대기해야지 가길 어딜 가냐? 소방관의 본업이 뭔데?) 쉬는 날 나오셨던 것이다. 그리고 '비번 활동'조차 없어도 직장 상사들이 당연한 듯 휘두르는 문화 폭력이 있었다. 회식에 억지로 참여시키고, 하급자인 비번자들을 자기 개인 사업장에 불러서 일을 시키는 그런 문화가 존재했다.
이런 환경이었으니 실질적으로 남편과 데이트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친정 엄마가 식당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자고 일어난 남편을 데리고 엄마 식당에 가서 점심 한 끼 먹으면 여가가 끝났다. 신혼 초 내내 싸움이 끊이질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자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나를 옥죄려 들었다. 내가 자신을 위해 늘 대기하고 있어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으니 그랬을 테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숨막혔고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게다가 그 시절에 구조대원들에게는 군대 문화 같은 게 있었다. 굉장히 가부장제적인 태도를 고수했고 그런 태도를 당연한 듯 여겼다.
말하자면 그때 우리나라의 소방 구조대의 실질적인 모습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노동환경과 다를 게 없었다. 봉급 노동자를 극한의 노동 환경에 갈아넣고, 그 뒷바라지를 그림자 노동자들에게 전가 시켰다. 둘 다 불행했는데, 시스템이 왜 이 모양이냐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화를 냈다.
너는 왜 그렇게 사냐?
내가 어떻게 사는데?
내 꼴을 봐라.
그러는 너는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지금도 이러한 문화는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고 여전히 잔존한 문화적 영향 아래 살고 있지만 그 시절처럼 말도 안 되는 지경은 아니다. 그때는 진짜 말도 안 됐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소방관들이 집단으로 초과근무수당 지급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하면서부터이다. 2009년에 전국적으로 소송 움직임이 일었고, 그 후로 승소 결과가 속속 나왔으나 지자체들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실제 지급을 미루면서 이자액이 계속 불어났다. 일이 이렇게 되자 2011년 국감에서 3교대로 전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해당 국감은 3시간짜리 초스피드 국감이었다. (하단의 기사 참조)
여담으로 옛 기억을 보완하려고 기사를 검색하다가 2009년에 퇴직한 소방관이 410만 원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보았다. 보자마자 순간 울컥해 버렸다. 2012년에 소를 제기했고, 2020년에야 승소 결과를 받았다. 8년을 기다려 겨우 410만 원이다. 겨우 410만 원인데 8년을 기다리게 했다. 이분 대체 그 긴 시간의 소송비용은 어떻게 해결하셨을까? 정부는 개인이 왜 이렇게까지 하게 만드나? (하단의 기사 참조)
근무 시간과 수당 지급 문제만 엉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소방 장비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남편도 영화의 고증에 감탄했다. 극 중에 장비 점검 장면에서 한 소방관이 호흡기를 뒤집어 보이며 “당번이 씻어서 잘 말리지 않아 물이 차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이었다. 남편 말에 따르면 개인 호흡기가 지급되지 않아서 호흡기를 씻어서 말려 돌아가며 썼다고 한다. 개인 위생 장비에 가까운 것을 그런 식으로 썼다니 기가 차지만, 주사 바늘도 불에 달궈 다시 쓰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지금 보면 그런 위생 관념 모두가 ‘예산’ 부족에서 나왔던 일들이다. 소방복, 소방 장갑 등등을 다 거론하다가는 지면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엄두도 못 내겠다. 그 모두가 예산과 관련되어 있다.
지금 개선된 처우들, 그 예산들이 다 어디서 나왔나? 나라가 잘 살게 되어서? 그런 것 같은가? 아니다. 소리치고 항의하고 요구하고 법에 호소해서 나왔다. 이마저도 민주주의 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독재 정권 아래서 이런 일들이 가능할 것 같은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앞날을 위해 국정을 운영했던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에 이르지 못했다. 그 분들 뒤에 나타난 자들, 권력욕과 재물욕에 눈 먼 자들이 나라 일을 조금 말아먹더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래도 기본은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뼈까지 꺾이지는 않아서였다. 계엄이라니. 언론을 통제하고 정치 활동을 금하는 포고령이라니. 한 걸음 한 걸음, 한 톨 한 톨 모아 일궈낸 것들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들을 했으니 조금 가벼운 이야기로 이 글을 맺으려 한다.
<소방관>에서 깔깔 웃으며 감상한 고증 장면들이 있다. 하나는 마스크팩을 붙이는 소방관들이다. 남편을 보면 웃긴 게 여름마다 시커멓게 타서 엉망이 되건만 피부에 대한 관심을 놓은 적이 없다. 대량으로 마스크팩을 사들여서 저녁마다 붙이고 있는데, 남편의 개인적 성향이라기보다는 소방관 문화에 가까운 듯했다. 남편도 “우리, 사실 피부에 되게 신경 써.”하고 인정했다.
또 초반부 구조대원들의 대화에서 ‘서장은 구조대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 이유로 “우리는 머리보다 손발이 발달해서 그래.”라고 말하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농담의 맥락과 같다.
남편은 종종 아무 준비도 해두지 않고 아이들을 닦달하거나 급하게 움직이곤 한다. 예를 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 식구들에게 빨리 일어나 나가라고 소리치지만, 막상 그 호령에 분주히 뛰어나가 보면 중요한 물건들은 하나도 안 챙기고 집 밖을 나온 식이다. 남편의 스타일은 사소한 디테일을 버리고 큰 맥락만 쫓는 기조를 유지하며 되는 대로 마구 구멍을 메우며 일을 진행하는 식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이들에게 농담을 한다. 분위기를 좋게 해야 집안이 편안하니까.
“아빠를 이해해. 아빠는 ‘손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신조로 살아온 사람이야. 멈춰서 생각하지 않아. 계속 움직일 뿐.”
이건 농담이지만 소방관, 특히 구조대원은 생각부터 할 수가 없다. 예전 가족 모임에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다. 그때 겨우 네댓 살이었던 첫 아이가 수영장에 빠졌는데,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비명조차 지르기도 전에 남편이 풍덩 수영장에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이가 물 밖에 나와 있었다. 이들의 직업적 반사 신경은 생각보다 빠르다. 생각하면 이미 늦으니까.
생각 좀 하고 움직여야 하는 직업군들은 다른 곳에 있다. 그 대표적 직업군에 있으신 분들이 지금 생각 없이 생존 본능대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제 살 길을 찾아서 이리저리 날뛰고, 무리 곁에 바짝 붙어서 빙글빙글 도는 것은 맹수에게 쫓기는 초식동물들이나 하는 짓이지, 이게 사람들이 할 법한 행동인가?
이번주 토요일에 두고 보자. 방구석 투쟁하는 소시민도 궁뎅이 뗄 만큼 화가 나고 있다. 그래도 소시민인 우리는 내 자리에서 타인의 안녕을 위해 내 목숨과 가족의 목숨을 걸어왔다. 니들은 뭐니?
+) 아, 근데 개봉날짜 타이밍이 너무 하네. 12월 4일이라니. 관객이 얼마나 들려나? ㅠ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통에 영화관이 텅 빌 것 같은데.
레임덕 때마다 도는 농담 있잖아? 나 그 농담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이번에는 농담이 아니니까 말해. 이 영화가 망하면 그건 다 한 사람 탓이지. 윤석열.
소방관은 못 받은 수당 달라고 소송도 못 하나 - 청와대 지침 내려온 후 소송취하 압박 논란... "기본권 침해"
https://fpn119.co.kr/sub_read.html?uid=14041§ion=sc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