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꽃이 피는 호수마을에도 봄 이 찾아왔다
감나무 가지를 흔들며 노란 감꽃을 바구니에 담고 있던 꿈 많은 봄처녀였던 그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감나무 마을 동네 사람들과 늘 함께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었다
적어도 도시의 작은 점포 주택으로 돌아오지만 않았더라면
아름다운 감나무마을의 경치 속의 주인공이 되어 영원한 전원의 행복을 누리며 살았을런지도 모른다
연핑크빛볼에 가지런했던 하얀 이를 들어 내보이며 웃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가 그녀를 "고아 "라고 하겠는가?
그냥 해맑고 꿈 많은 방아댁 막내딸이었을 것이다
보랏빛치마에 분홍 저고리를 입고 숱이 많은 검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리고 빨간 댕기리본을 매고 다녔던 그녀!
방앗간 기계들을 휘 둘러보며 낯설고 구석진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었던 그녀가 시끄러운
방앗간에서 살기보다 도시의 점포집에서 니트기술을 배워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녀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녀 스스로 슬이네 점포주택으로 찾아왔던 '자야'라는 이름의
전쟁고아였던 꿈 많았던 처녀였었다
어린 나는 하얀 미소를 머금은 "자야"와 함께 좁은 점포집 방에서 좁게 더 비좁게 살게 되었다
그녀는 구슬이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은 더 많아 보였다
구슬이는 스스로 그녀를 "자야언니"라고 불렀다
그렇게 자야언니와 구슬이는 엄마가 하는 특수문양 니트가게 점포주택 안의 비좁고 작은 니트 방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구슬이네 집은 도심의 시내 중심가 한 복판 작은 점포주택이었다
그 집은 "니트 문양 주문'으로 항상 손님들로 북적이었다
가게 직원들과 함께 대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기에 너무 좁아서, 당분간 자야와 함께 시골 방아댁에 내려가서 살기로 하였다
그 곳은 감나무와 사과나무가 많은 과수원이 딸린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그래서 자야와 나는 감나무가 노란 꽃을 피우는 맑고 파란 강이 유난히 많은 경치가 아름다운 호수마을로 내려가서 살게 되었다
항상 자야와 구슬이는 늘 함께였었다
그곳은 노란 감 꽃이 피고 지며 해바라기와 자줏빛도라지 꽃들로 둘러 싸인 호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구슬이는 학교 갈 때까지 그렇게 자야와 함께 살았어야 했었다 자야와 구슬이가 호수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록이라고 하는 남자 머슴아이가 방아댁 양아들로 먼저 들어와서 살고 있었다 그는 버스정유소에 우리 둘의 도착을 반기러 마중 나와 있었다
구슬이는 방아댁 손녀였었고 자야와 록이는 방아댁 수양딸과 아들이 되어 방아댁의 과수원 일을 도우며
한 식구가 되어 특히 그들 둘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어색함 없이
친 한 오누이처럼 함께 행동하며 살게 되었다
6.25, 전쟁 후 도시에는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자야와 록이는 외로운 노부부가 살고 있는 방아댁의 수양아들과 딸이 되었다
공기 맑고 물 좋기로 소문난 아름다운 호수마을 감나무아래 방아댁의 사과나무 과수원에서 그 둘은 처음 만났던 것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먹거리가 없었서 수양남매 가 된 자야와 록이는 전쟁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남매로 서로 의지하며 방아댁의 과수원일을 도우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다
봄이면 록이는 들에 나가서 김을 매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해왔다
자야와 록이는 봄나물을 캐고 개나리와 진달래꽃잎을 따서 "화전"을 만들어 먹었다
록이는 이른 아침 해가 뜨면 산에 가서 자야에게 땔감을 만들어 왔다 음식솜씨가 남달랐던 자야는
"예쁜 꽃화전"을 만들어 먹으며 그 둘 은 방아댁의 행복한 오누이가 되어 한 동안을 함께 살았었다
아름다운 호수마을에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청년들로 칭찬을 받으며ᆢ
그 해는 유난히도 감꽃이 많이 피었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노란 꽃비를 맞으며 방아댁 한옥 마당을 노랗게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던 따스한 봄날
방아댁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록이가 멀리 도시의 일자리를 찾아 방아댁을 떠났고
자야는 도시의 작은 점포주택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자야와 록이는과수원을 떠나며 헤어졌다
자야는 도시의 작은 점포 주택에서 니트무늬기술을 배워서 스스로 독립을 하고 싶어 하였다
슬이 엄마의 일은 니트에 무늬를 계산해서 넣는 "특수문양니트업"이라 자야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자야는 그렇지가 못 하였다
"니트의 게이지"를 낼 수 없어서 일을 배울 수가 없었던 자야는 학교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낫 " 놓고 "ㄱ" 자도 몰랐다 자기 이름 석자를 제대로 쓸 줄 몰랐다
시골 감나무집에서 방아댁의 수양딸로 곱게 집안 일만 거들며 착하고 순진하게 살아왔던 그녀는 체계적인 교육의 기회를 놓쳤다
도시에 살고 있는 슬이 엄마의 가게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는 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도시의 처녀들과는 비교가 되지않을 만큼
차이가 많이 났다
전쟁 휴전 후 나라도 사람도 많이 달라지며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너무 빠르게 바뀌어 가는 도시 사회에 적응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었던 자야!
햇살이 도시의 가게 문을 두드렸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 보니 "자야가 없어졌다""
"거래처 가게에 저녁심부름을 보냈는데.. 자야가 왜 안 돌아오는가? "
"주문받은 일감은 잔뜩 쌓여가고 있는데 큰일이구나!"
좁은 점포주택의 식구들이 니트문양작업을 하다가 놀라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야를 찾아다녔다
슬이도 "자야 언니!"를 부르며 어두운 밤이 찾아오는 줄도 모르고 자야 이름을 부르며 도시의 좁은 골목길을 찾아 헤매었다 그녀를 찾을 길이 없었다
대도시에서 장사를 배워가며 수완 좋게 잘 살아가고 있는 록이 소식은 가끔씩 들려왔지만 자야의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방아댁은 늘 자야를 걱정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도시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감나무와 사과나무가 있는 과수원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방아댁과 슬이는 계속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며 기다렸다 그러나 자야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흐르는 세월의 강물을 따라 걸으며 감나무마을 과수원
으로 향하였다
"자야언니"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감나무는 조용한 미소로
노란 감 꽃을 흩날리며 묵묵부답으로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서 있기만 하였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야가 호수마을 감나무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그리움으로 가득찬 기도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안개 저 너머 호숫가의 아지랑이 만을 남긴 채 아스라이 사라져만 갔다
수채화 물감으로 다시 그리고 싶은 사람,
" 자야 언니! "
그리워서 다시 한번 이름을 불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