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를 뿌리며 ᆢ
내가 태어나자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첫 선물
나의 이름,,, " 영롱한 구슬"이었다
언니와 나를 부르는 이 이름은 부르는 말은 달라도 뜻이 똑같았다
아들이었으면 항렬에 맞추어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이름을 지어야 하고 교육도 집안 어른들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 그 시대에 두 딸이 먼저 태어났었기에 굳이 항렬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어른들의 허락을 받았다고 하셨다 딸이 태어나면 아버지 마음대로 이름을 지을 수 있어서 기분이 몹시 좋았다고 하셨다
골목 시장판 장똘뱅이 가 된 나를 바라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 계속 언제까지 시장바닥에서 살아야 하나? 이제 그만 주택으로 이사하자!..
딸의 이름을 " 영롱한 구슬"이라고 지었으니 내 스타일 대로 키워보고 싶다"
라고 하시며 어머니를 설득시켰다
딸이니까 집안 어른들이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서.. 더 기분이 좋았다고 하셨다
딸들에게는 어른들 간섭받지 아니하고 아버지 뜻대로 자유롭게 이름을 지울 수 있어서 좋았고 교육도 아버지 방식대로 시킬 수 있어서 기분 좋은 자유를 집안 어른들로부터 허락받을 수 있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었다
점포 정리가 쉽지 않은 엄마의 현실과는 늘 부딪히며 살아왔던 부부였었지만 어머니도 흔쾌히 동의하였다
채송화꽃씨를 뿌리고 열흘이 지나자 떡잎이 올라왔다
부지런히 물을 주었더니 두 송이의 영롱한 채송화 꽃이 피어났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컥"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채송화! 그리운 아버지!
5월이면 더욱더 아버지 생각이 난다
딸이 열인 집에서 태어나신 양가(큰집 작은집) 독자 외아들
몸은 왜 그렇게도 갸느리신지,
봄이면, 채송화를 닮으셨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가을 코스모스를 닮으셨던 우리 아버지!
나라의 슬픈 근현대사를 온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며 이겨내야만 했던 아버지!
힘든 시대에 태어나서 나라의 전란을 심하게 겪었던 세대로서 격동기 속 세상풍파를 다 겪어내야만 했던
한국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공원 산책로 연못에 노란 꽃창포가 피었다
연못 위에 떠 있는
노랑꽃창포가 되어 우리들을 바라보신다
오 남매에게 봄이 왔다고 알려 주시네
"얼른 일어나거라"
"뜰 앞마당에 꽃을 심자!"
단층 양옥의 작은 정원을 손수가꾸시며
셰익스피어를 사랑하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이
올봄에도 그 가련한 몸짓으로 오 남매의 이름을
차례차례 부르며 채송화로 꽃창포로
꽃이
되어 다시 피어나셨는지요?
보고 싶은 그리운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