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메마른 마음에 스며든 한 줄기 빛처럼

by 수피아
그때부터 나는, 신의 침묵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오래된 질문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깨어났다.
믿음이란 무엇이며, 왜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신을 찾는가.
그리고, 신의 침묵 속에서도 어떻게 사랑이 남을 수 있는가.


『캠프 15』를 읽으며,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켜낸 인물들을 보다가 문득 영화『침묵』이 생각났다. 예전에 일본 나가사키의 천주교 박해 관련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순교자들의 기록을 보고,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줄거리만 봐도 너무 잔혹해서 감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이번에 다시 검색하다가 영화의 원작이 소설임을 알게 되어, 책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캠프 15의 전지적 시점에서 벗어나, 『침묵』의 1인칭 서술을 마주하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마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와, 단 한 사람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고요한 문장 속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은 쉼 없이 흐른다.


소설 속 일본의 농민들은 짐승처럼 일하고 짐승처럼 죽어갔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사람처럼’ 대하는 존재는 종교뿐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들키는 순간, 가족 모두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먼 바다를 건너올 순례자들을 간절히 기다렸다.

포르투갈에서 온 성직자는 몇 달 동안 숨어 지내다가 마침내 그들을 찾아 마을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세례와 고해가 끊이지 않는다. 그는 그 광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마치 사막을 계속 걸어온 대상이 마침내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그들은 저를 마구 퍼마시려 하고 있습니다.”

— 엔도 슈사쿠, 『침묵』


그 문장은 단지 믿음의 기쁨만이 아니라, 오랜 고통 끝에 찾아온 ‘영혼의 안식’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믿음은 목숨을 건 것이었지만, 동시에 살아 있음의 증명이기도 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오래 전의 나를 떠올렸다. 삶의 모래바람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맬 때, 나에게도 오아시스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늘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문득 생각났다며 걸려온 안부 전화, 대접받은 한 끼의 식사, 한 권의 책, 혹은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작은 친절도 있었다. 한번은 은행에 가서 주민증을 냈는데 비닐이 조금 벗겨져있었다. 그걸 보고 직원이 투명 테이프로 고정을 해주었는데 눈물이 울컥 나올뻔했다. 마치 아파도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나의 한 부분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 같이 느껴졌던것 같다. 그때 '내가 많이 약해져있구나'싶으면서도 감정의 섬세함이 살아나고 있구나 싶기도 했다.

반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줄 수 있거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도울 수 있는 작은 일들...그 속에서 순간, 나는 “아, 아직 나는 버려지지 않았구나” 하고 느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 속 신부가 그랬듯, 우리도 때로는 침묵 속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건 소리로 들리지 않고, 사건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 날 조용히, 마음 한쪽이 따뜻해지는 형태로 다가온다.

사막을 건너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갈라지고 메말라간다.
하지만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물줄기가 있다.
그건 누군가의 기도일 수도 있고, 아직 꺼지지 않은 우리의 희망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수면위빛줄기.jpg

작가의 말

이 글은 브런치북 《당신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의 첫 번째 글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중심으로, 신의 침묵과 인간의 고통,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천천히 기록해 나가려 합니다. 비슷한 길을 걷고 계신 분들께 이 글이 잠시의 오아시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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