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나는 나에게 죄를 지었다

스스로를 잊은 마음에게 건네는 사과

by 수피아

얼마 전, 오랜만에 거울을 보다가 낯선 사람을 마주했다.

지쳐 보이는 얼굴, 오래된 피로가 눌러앉은 눈빛,
한때 열심히 꿈을 꾸던 사람의 흔적은 옅었다.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작지만 선명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나에게 죄를 지었다.”

돌이켜보면 아닌듯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기준을 위해 애썼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내 감정과 욕망을 억눌러 왔다.
그게 ‘성숙’이고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건 타인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스스로를 방치한 무관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는 것을.

엔도 슈사쿠는 『침묵』에서 말했다.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다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며 생각했다.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고도 모르는 것만 죄일까?
나 자신에게 상처를 남기고도 모른 척한 건,
그보다 더 깊은 죄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을 너무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그때 왜 그랬을까” “그 말을 왜 했을까”
그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속에 법정 하나가 세워진다.
그리고 그 법정에서 나는 늘 피고로 서 있다.

하지만 엔도의 세계에서 신은 그런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는다.
그는 실패한 인간, 배교한 인간,

무너진 인간의 자리까지 내려와 조용히 곁에 앉아 있다.
그 침묵이 곧 사랑임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요즘 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잘못한 일들을 변명하지 않고,
그저 “괜찮다, 이제 그만 괴로워하자” 하고 다독인다.
그건 타인의 용서가 아닌 나 자신에게 내리는 사면이다.
비로소 그 순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외면했을 때도 인간은 죄를 짓는다.
하지만 그 죄를 깨닫고, 다시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우리는 구원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선다.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나를 미워했던 그 시간들을 끌어안으며,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이제는 너를 용서할 때야.”


misty-forest-path-stockcake.jpg


작가의 말

스스로를 용서한다는 건,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다시 품어주는 일이다.
《당신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는 그 용서를 배우는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3화2편. 무관심의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