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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행복하고 싶었다, <한국이 싫어서> 리뷰

장건재 <한국이 싫어서> (2024) /아트나이너 19기

by 이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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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쌀쌀했던 겨울, 계나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다니고 있는 직장은 대체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고, 자신이 매일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주변 사람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쉽게 말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면? 더이상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인생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계나는 떠나기로 했다. 따뜻한 곳, 뉴질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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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는 각색 과정에서 추가된 설정이 몇 개 있다. 계나가 한국을 떠나기 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대학 동창 경윤은, 원작에서는 의전원을 다니는 여자 동기로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스크린에서 마주하게 되는 경윤의 모습은 얇은 옷에 슬리퍼, 영락없는 공시생 남자다. 계나와, 길거리의 사람들과 대비되는 옷차림의 경윤은 한국의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떤다.


계나와 경윤의 두 번째 만남은 한 식당에서다. 저번 만남 때 약속한 대로 식사를 하는 두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레 식당 TV로 향한다. 화면 속에는 사람들에게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 행복 전도사 채복희가 등장한다. 돈이 아니라 행복을 모으라는 채복희의 말에 계나는 코웃음을 치지만, 경윤은 자신이 구매한 채복희의 행복 굿즈 나침반을 계나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흔들리는 나침반 바늘처럼, 정확한 방향을 위해서 조금씩 흔들리고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채복희는 원작에는 등장하는 않는, 영화에서 새롭게 추가된 인물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개인의 '행복'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는 걸 바뀐 설정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원작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유학원을 운영하는 태은의 가족 이야기 역시 영화에서 확장되었다. 태은의 남편 상우는 뉴질랜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계나와 대화하며 심하게 다리를 떠는 상우의 모습은 추위에 떨던 경윤를 떠올리게 한다. 오직 상우만이 감지하는 집의 미세한 진동과 인물들의 떨림은 그들 내면의 불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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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나는 뉴질랜드가 '좋아서' 뉴질랜드로 떠난 게 아니다. 그저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벗어난 거다. 원작과 다른 설정의 세 인물은 자살, 질병, 재난이라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다.


순간의 행복을 말하는 채복희의 죽음은 영화가 계나에게 던지는 질문 같다. 지금 뉴질랜드에 있어서 정말로 행복하냐고. 상우의 망상인 줄 알았던 집의 미세한 진동은 지진이라는 실체가 되어 나타난다. 누구에게나 행복을 안겨줄 것 같았던 뉴질랜드가 모두에게 행복의 선택지가 될 수는 없음을 상우의 죽음을 보며 알게 된다. 뉴질랜드에서 상우가 느끼던 진동이 한국에 있는 경윤에게 공명하듯, 상우의 죽음은 경윤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죽은 경윤의 이미지는 다시 계나의 거울상과 맞닿는다. 나름 번듯한 직장에 취직도 했었고, 뉴질랜드로 떠나기까지 했던 계나와 한국에서 시험공부만을 하던 경윤은 서로 정반대의 삶은 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계나와 경윤은 둘 다 한국의 추위에 몸을 떨었고,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계속해서 헤매였다.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어딘가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냐고 말하는 경윤에게 계나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거울로 연결되는 경윤과 계나의 이미지는, 지금 계나가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 경윤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암시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떠나는 건 죽은 경윤이 아니라, 계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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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각자의 행복이 존재한다. 계나의 전 남자 친구 지명은 전날 늦게까지 맥주를 마셔도 다음 날 새벽 5시에 기상해야 하는 불쌍한 직장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계나의 입장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실제 지명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첫인상부터 껄렁껄렁해 보이고 매사에 진지해 보이지 않던 유학원 동기 재인은 계나보다 먼저 자신의 길을 찾는다. 재인에 대한 계나의 오해가 풀리는 순간, 우리는 계나의 벙찐 표정을 보며 알게 된다. 자신의 입장에서 남의 행복과 삶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기성세대의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계나와 우리가 보기에 안정적인 직장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걸 행복으로 여기는 계나의 부모님은 구시대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결정할 권리가 없듯, 자식 역시 부모의 행복을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는 없다. 계나의 동생 미나와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는 그들이 함께 노래하는 작은 공연장과 공연을 마치고 가지는 술자리가 그들의 전부이자 행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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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당신은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요,

그걸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꼭 행복을 쫓으며 살아야 할까요?


모두에게 들어맞는 보편적인 행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각자의 행복이 존재하고, 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 역시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계나는 이제 서른이 되었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시 떠난다. 이제는 계나가 무언가 '싫어서'라는 말 대신 무언가 '좋아서'라는 말을 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 윗글은 아트나이너 19기로 활동하며 작성한 글으로, 아트나인 공식 카페와 블로그에도 업로드 되어있습니다. 개인 아카이브용으로 브런치스토리에도 업로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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