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에스퍼의 빛> 리뷰
괜히 그런 영화가 있다. 볼 때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생각하게 되고 곱씹어볼수록 계속해서 좋아지는 영화. 사실 내게는 그런 영화가 많지 않지만, 아주 드문 그 일을 <에스퍼의 빛>이 해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형식은 무척 독특하다. <에스퍼의 빛>은 다큐멘터리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험 영화에 가깝다. 온라인 상으로 TRPG(Tabletop(or Table-talk) Role Playing Game, 간단히 말하자면 텍스트로 진행되는 롤플레잉 형식의 게임이다)를 플레이할 청소년을 모으고, 기록된 플레이를 영상으로 구현했다.
15명의 청소년들은 세 차례의 게임('괴력의 아이들', '새벽의 파편', '기뇌국')을 플레이했고, 각 플레이를 할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TRPG 플레이는 어찌 보면 창작의 일종이다. 작가의 작품에 작가 본인이 투영되는 일은 흔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현실 속 삶이 게임 속 인물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1막에서는 플레이어들이 가상 세계 속 본인 캐릭터를 직접 연기하지만, 2막과 3막은 플레이어가 아닌 인물이 게임 속 캐릭터를 연기한다. 후자의 경우 플레이어와 다른 젠더, 나이대의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떤 플레이어가 어떤 캐릭터를 플레이하는지도 명확히 알기 어렵다.
<에스퍼의 빛>은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카메라는 플레이어들이 현실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전혀 비추지 않고, 각 개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조차 일절 없다.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실 세계는 TRPG를 플레이하는 그 순간에 한정된다. 계속해서 바뀌는 캐릭터들은 혼란스럽고, TRPG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다면 스토리를 따라잡는 것조차 힘겹다. 하지만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달라는 듯, 관객 앞에서 스스로를 구태여 포장하지 않는다.
그 불분명함이 인터넷 세계의 속성과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서로의 얼굴을 포함한 신상을 전혀 모르기에 가상 세계 속 청소년들은 더 자유롭고 과감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재훈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전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아 다음 플레이를 하는 청소년도 있었다고 한다.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가상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다.
감독은 청소년들에게 가상의 세계를 제공했고, 그 세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갈 자유 의지를 제공했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병에서 완치된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마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그저 학교와 집을 오갔을 청소년들은 자신의 힘으로, 간절한 소원으로 세상을 지켰다. 청소년들은 분명 이 게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간접 경험 하며 성장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각기 다른 이능력을 가진다. 그들이 가진 이능력은 각 개인 속에 내제된 가능성에 대한 메타포로 느껴진다. 너네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선한 마음이 이 세계를 더 낫게 만들 거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만 같다. 청소년 시기에 내제된 가능성을 게임 속 세계에서 직접 마주하게 하고, 이를 영화로 구현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이 영화를 옹호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