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아 Mar 27. 2024

머나먼 여정, 그리고 사투

머나먼 여정, 그리고 사투

아직도?


비행 내내 했던 질문이었다. 자다가 일어나면, 아직도 지구상 어딘가 상공 위였고. 멀미하다가 깨어나보면, 아직도 지구상 어딘가. 이름 모를 나라들 상공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드는 의문. 아직도? 였다. 이렇게 파리가 멀었나? 깨달음을 많이 얻으며. 내가 만약 이집트나 아프리카를 갔으면 정말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일어났겠구나 싶은 생각에 식겁했기도 했던 순간순간이었다. 


(파리 가자고 하기를 잘했지? ㅎㅎ) 


우선 베트남행 비행기 타면서 나쁘진 않았다. 편했다, 아. 직. 까. 진. 아무래도 이코노미 좌석이다 보니, 비좁긴 했지만 그래도 설렘과 기대감이 좁디좁은 공간이 주는 답답함과 뻐근함을 상쇄시켜 주었으니까. 마치 콩깍지가 단단히 낀 느낌이랄까?


우리가 저녁 시간인 오후 6시쯤 탑승 시작했던 관계로 저녁 기내식이 나왔는데, 아래와 같았다.



단출하다면 단출한 기내식이다. 뭘 시킨 건지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움핫핫~ 과연 이 기내식의 메인 음식이 뭔지? ㅎㅎ 자, 기대하시라~~ 


월남에서 돌아온~ 새하얀 은상사~~


내가 그동안 얼마나 굶었던가... 이 기내식을 먹기 위해 얼마나 참고 인내했던가.. 이건 단순한 기내식이 아니다. 나에게는 일용할 양식이자 은총 그 자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말로는 뭐라 할 수 없는 이 순간..  
참아온 나날 힘겹던 날..

다 사라져 간다 연기처럼 멀..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은색의 알루미늄 용기 뚜껑을 벗어던지면~~

어라?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들의 침묵. 순간, 우리의 미각은 증발하여 이데아의 세계로. 우리의 음성은 소리 삼킨 아우성이 되어 진실의 방으로. 지평선 너머 어딘가로 날아가버렸고. 나는 문득 신디는 어떤 음식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신디의 기내식도 열어보았다~



신디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디.. 맛.. 맛있어 보이지 않니?"


그런 내게 신디는 말했다.


"자기야~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우리 비즈니스석 타자~~~"


그래, 비즈니스 타자~~ 그런데, 잠깐? 주어가 빠진 거 같아. 누가 돈 많이 벌어? 당연히 우.. 리지??? 우리겠지? 우리일 거야~ 그래~ 우리, 돈 많이 벌어서 비즈니스석 타자!! 오늘은 앞으로 이어질 우리 여행기의 예고편이니까~~ 예고편에 모든 걸 보여줄 수는 없지~ 암암~~ 그런 나에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 파이팅~~"


순간, 그녀의 가득한 사랑을 듬뿍 받은 나. 덕분에, 이 기내식에 더 이상의 향신료, 조미료들은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미소 하나로 이 기내식은 지구상 최고의 음식이 되어있었다~ 파이팅! 노아 파이팅!! 어차피 노아가 파이팅 해야지, 나는 노아가 번 돈을 쓰기만 하면 되니까~ 


"자기야 안 먹어?"


나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갑자기 배부른 거 같아. 자기 많이 먹어~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기내식이 다 그렇지 않나? 솔직히 진수성찬을 바란다면, 전용기를 타거나 퍼스트 클래스를 타야 하는 거고. 다소 미식가인 그녀와 달리(*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 강조!! - 디스 아님 주의 ㅎㅎ), 나는 음식에 그렇게 생각이 없기에 잘 먹을 수 있었다. ㅎㅎ 기내식을 먹으면서 당시에 공조 2 영화를 봤었는데, 평소 "카우치 포테이토"인 나로서는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적응할 필요 없이 비행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한때 정상가도를 달리던, "카우치 포테이토" 시절의 전성기가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증발해 버린 20대.. 옅어져 가는, 나의 정체성인 청춘. 희미한 자국만 남은 나에게는 오로지 피로만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왜 연비는 왜 그렇게 예전같이 않은 건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쯤 너무 자고 싶어서 감기는 눈을 애써 억지로 뜨면서 졸음과 사투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으니. 실은 잠보다도 더 날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실 하나..


오늘 하루 양치를 한 번도 못했다는 거..

 

파리, 네가 뭔데 날 양치도 못하게 하는 건데!! 치약과 칫솔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안 가져와버린 나와 신디. 고문이었다. 서로에게 가까이 밀착해 사랑을 속삭이던 우리, 그러나 서로의 입에서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나는 걸 인지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입을 열지 않기 시작한 우리.


자기야.. 난 자기의 미소 짓는 모습이 좋아. 웃는 거 말구~
말없이 미소 짓는 모습~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 끝까지 변치 않는 걸루. 잠깐만. 내 어깨에 기댄 그녀의 머리. 그 머리로부터 아지랑이처럼 올라온 향기. 그 향기에 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한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어지러 히 교차하게 되었다. 참으로 인생에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달까? 이 역시 추억이겠지~ 아.. 다음에는 꼭 칫솔과 치약을 챙기리라!! 그래도, 곧 도착할 베트남 공항에는 치약과 칫솔을 팔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베트남 항공에 도착!!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착륙해서 비행기를 나오는데, 순간 습하고도 더운 공기가 확 불어오는 게 베트남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장마를 겪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수속 밟고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전, 게이트에서 23시 45분 정도? 까지 시간이 남았던 우리, 격렬히 치약과 칫솔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상에!!!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어느 곳에서도 치약과 칫솔이 없었다.. 


이런 지저스... 

제발.. 신이시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너~~~ 무 찝찝했다. 끈적끈적하고도 꾸질꾸질한 몸과 치아.. 누가 꾸질꾸질함의 실체가 뭔지 물어본다면, 그때의 내 모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꾸질꾸질함이 뭔지 알아? 나야~ 지금 내 모습! 그래도 꿩 대신 닭?이라고 자일리톨이 있어서 그거 사서 씹으면서 베트남에는 어떤 걸 파는지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신기해서 찍어본 하나~


붕어싸만코였다~~~ 세상에~~~ 그리고 심지어 한국에는 없는 맛이었다~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찍어보았지 뭐야~ 썩 궁금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보는 한국 아이스크림이란. 이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런 나에게 신디가 말했다.


노아~ 나 배고파~


이에 나는 그녀를 보며 반문했다.


"아까, 기내식 먹지 않았니?"


그녀는 내게 당당히 말했다. 


"시원찮았어.."


그래, 우리 자기를 배고프게 하면 안 되지! 그리고 도달한 곳.


이름 모를 곳에서 이름 모를 음식을 먹은 우리. 맛은 딱 사진에서 느껴지는 그 자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지금의 우리 처지를 보여주는 듯한 맛. 


음식을 먹고 나도 10시도 안 된 시간.. 난 하염없이 시계만 바라보았고. 그녀는 내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 자기 시작했다.


자기야~ 자기도 피곤할 테니까 누워오ㅟㄹ윙누리ㅏㄴ위리


자기야?


자기야?


자니?


내 무릎 위에 누워 자고 있는 신디. 그리고 신디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돌아서 가려는 내 모습처럼, 아주 천천히 멀어져 가는 시간. 그때의 내 심정이란..


아...


종아리에서부터 머리까지 올라오는 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살려줘.. 제발... 이재한 형사님? 들리세요?"


신디를 뒤로 하고, 나도 잘 거야!!! 하고 눕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내가 자면, 우리 짐을 이 공항 어딘가 누군가가 가져가지는 않을까? 란 생각으로 인한 긴장감과 혹시나 비행시간을 놓칠 수도 있을 두려움에 멍하니 좀비처럼 앉아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신디 보고 있나?)


언제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건지, 과연 나는 파리에 도착할 수 있는 건지를 의심하면서 긴긴밤을 보내고 있었다. 내 무릎 위에 곤히 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홀로 여러 상상들을 하면서..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침이 도래하기 전이 제일 어두운 법이니..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내 인생에서 신디가 나타날 때까지 지난날의 내가 기다렸던 것처럼, 인내하고 또 인내하자.


그렇게 긴긴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전 04화 넝쿨째 굴러 들어온 당신(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