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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Apr 01. 2024

드디어, 우리의 파리

드디어, 우리의 파리

살려줘..


오후 9시 40분..


오후 10시..

오후 10시 10분..

오후 10시 20분.. 30분.. 40분.. 마치 예비군 훈련처럼, 징그럽게도 느리게 가는 시간이여.. 내 다크서클은 피로와 함께 발 끝까지 번지점프하듯 내려가 앉은 지 오래, 바닥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를 보여주었고. 신디는 계속 꿈나라 속으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기는 늘 이런 식이야~~~"


원망 어린 모습으로 보다가도, 자는 모습 보면서 풀리고. 그러다가도 째려보고, 풀리고 째려보다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시간은 23시 45분에 가까워 오고 있었으니!! 그 순간, 내 발끝까지 내려앉았던 피로가 지붕 뚫고 승천하여 엔도르핀으로 불꽃놀이 팍~~~ 터지고~~~ 감동도 터지고~~ 나는 얼른 신디를 깨워 부랴부랴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그런데, 진정한 시작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샤워 NO, 양치 NO, 피로 게이지 200%인 상황에서의 탑승. 그 옛날 유격 훈련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가히 최악의 컨디션이었는데 그 컨디션에서도 더 떨어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 이코노미 클래스였다. 냉혹한 현실이여.. 이제 하한가의 정점을 찍고 이제 오를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아직 진정한 밑바닥은 오지도 않았음을 보여주는 현실이었다.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신디를 바라보며, 나는 살며시 고개를 다른 데로.. 그런데, 이상함을 발견했다. 어라? 어라?


한국인이 없어!!


나는 신디를 다급히 부르며 말했다.


"신디!!! 한국인이 없어.. 죄다 코 큰 사람들뿐이야.. "


신디는 가만히 유심칩 갈아 끼면서 말했다.


"응, 우리 있잖아!"


아, 우리가 있구나. 우리만..


"코 큰 애들밖에 없어!!!"


나의 다급히 외치는 말에도 신디는 계속 유심칩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응, 외국이라 그래."


아, 외국이라 그렇구나~~


신디가 나를 보며 말했다.


"자기도 유심칩 갈아 끼워줄까?"


나는 그녀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내 폰을 내밀었다. 영어는커녕, 친하지도 않은 나(그래서 수능 시험 때 외국어 영역을 그리 보았던 건가.. 핫핫핫!! 나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이라고~~ 그래놓고 외국어 영역보다 언어 영역 점수가 더 안 좋았던 건 우리 사이의 비밀~~). 그런 나에게 환승 한 번에 풍경, 시설, 사람들까지 죄다 달라진 광경을 겪게 되니 적잖이 무서웠었다. 까딱하다가는 소매치기당하고, 길 잃어 국제 미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괜히 복대에 보관해 둔 여권과 돈, 스마트폰이 신경 쓰여 계속 복대에 신경을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유일한 나만의 통역사인 신디 바자가랑이만 붙들고 있었다.


파이팅! 신디!


아무튼,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우리. 거기서부터는 전혀 겪어보지도 못했던 고통을 겪었다. 우선, 옆자리에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에서 어색함에 견딜 수 없었고.


좌석은 비좁고 비좁고. 비좁았다. 게다가 씻을 수 없어서 내 육체 위 땀, 먼지 등은 그 자리에서 퇴적되어 가 화석이 되는 듯했고. 내 치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입 안은? 세상 모든 냄새들을 다 끌어모은 블랙홀이라도 된 듯,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너와 나. 우린 그런 서로를 바라보며..


응~ 절대 입 열지 말자는 그 약속 변함없는 걸루~~
자기를 향한 내 마음처럼~~



다행스럽게도 화장실에 칫솔, 치약이 있어서 어찌나 감격스러웠던지..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엉엉 울었다. 다소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거라도 어딘가!! 그 당시 나로선 이 세상 어떠한 것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번 가지고는 악취가 이미 찰가 머리처럼 딱 붙어버려 떨어질 생각을 안 했기에, 여러 번 양치질을 해야 했지만. 그 와중에 나는 내내 옆자리 신디를 응시했다. 열심히 레이저를 쏘아대며, 신디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내 텔레파시가 통했기를 바라면서.


너.는.양.치.안.하.니?


오 그대여.. 양치질을 안하는 그대여.. 그런 그대를 사랑한다. 아, 푸른 하늘 아래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과도 같은 그대여.. 그래, 나에게만 봄바람이면 되었지. 그거면 돼.


"자기야? 왜? 멀미나? 아파?"


신디가 나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며 물었다. 나는 그런 신디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지긋이.


그게 아니라, 아프기보다는.. 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그리고 턱 끝까지 차오르는 용트림. 그러나, 이번에는 참을수 없었던 나!


"자기는, 양치 안하니"


그러자, 신디가 말했다.


진작했지! 내가 치약 칫솔 있다고 알려줬었잖아!


그리고 그녀는 날 노려보며 말했다.


날 더러운 여자 만드는 거냐~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위기감.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공포가 이 비행기 안을 가득 채우고 있고. 날 노려보는 그녀를 보다가 용기내 한 한마디.


"손들고 서있을까"


이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됐어~ 다음부턴 오해하지마~"


응! 안할께~!! 내가 장시간의 비행 때문에 좀 피곤했나봐~


어쨌든 상황이 이러했다. 그래도 멀미는 다행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5시간인가 지나고부터는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갑자기 극 중 전개가 급반전되듯이, 내 비행도 그 이후부터 급반전되기 시작했던 거 같다, 안 좋은 쪽으로. 멀미약 약효가 다 된 탓인지 갑자기 뒤늦게 답답함과 지루함, 갑갑함이 밀려와 고역 아닌 고역을 겪어야 했다. 갑자기 예민 초능력이라도 생긴 탓인지 모든 감각들이 곤두서기 시작했고. 팔다리를 마음껏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수갑이 온몸에 채워진 기분이었달까? 의자도 뒤로 아예 젖힐 수가 없어서 제대로 잘 수도 없어서 가수면을 취해야 했다. 창문을 열고 싶었다.


살려줘..



내가 격렬하게 외치고 싶었던 한마디.. 살려줘. 제발. 못 견딜 거 같았다. 아마, 멀미를 했던 모양인데. 그럼에도 기내식이 꼬박꼬박 나온 건 좋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질리기 시작했다. 원래 좋은 것도 여러 번 먹다 보면 질리지 않나. 원푸드 다이어트를 하는 기분이었는데. 아, 그 어떤 기내식을 먹어도 전혀 감흥이 없었다. 그냥, 이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었다. 너무 답답했다. 갑갑했다.


너~무 길었다. 한국과 파리.. 그 둘은 생각보다 멀었다. 이번 비행을 통해 확실히 그 거리를 체감할 수 있었다. 좀 자다가 일어나서 보면, 무슨 스탄이었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면, 아랍권 나라들. 이젠 도착했겠지? 싶으면, 동유럽. 이쯤 되니 드는 생각.


파리는 어디에 있는 거니?


그렇게 깊은 어둠과 함께 내 모든 걸 삼킨 채, 이 밤은 영화 필름처럼 쉼 없이 이어졌고. 불어오는 안갯속에서 품어왔던 희망, 설렘, 낭만 모든 것들이 옅어져가고 있었다.

.

.

.

그렇게 모든 희망과 설렘, 낭만 모두 뿌연 안개에 스며들어 희미해져 갈 때쯤, 푸른 하늘과 환한 태양이 등장하였다. 그의 등장에 지난날의 모든 눈물에 젖어들었던 설렘, 낭만, 희망 모두 이슬 한 방울 장식한 채, 파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Ladies and gentlemen, we have landed at Paris-Charles de Gaulle Airport.



안내 방송에 눈을 뜨니, 어느새 창문에는 푸른 하늘과 함께 따스한 햇살이 보였고. 내 옆에 기대 자고 있는 신디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가만히 신디를 바라보았다.


C’est drole, je ne sais pourquoi

참 재밌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Ca me fait toujours penser a toi

항상 네 생각이 나네


Pour plein d'aut' gens, c'est la magie

다른 많은 사람들에겐 마법이고


L'amour, les baguettes, Paris.

사랑이고 바게트겠지, 파리


스텔라장 "L'Amour, Les Baguettes, Paris" 가사 중에서..


문득, 우리의 첫 시작이 생각나.

어느 여름날, 신촌에서 열렸던 파리 축제. 그 축제에서 샹송을 들으면서 우린 서로의 손을 잡았었다. 손 끝에서 느껴지던 너의 떨림과 들려오는 내 심장 소리. 그리고 조그맣게 속삭이던 너의 고백.


우리, 어떤 사이예요?


이에 나는 너를 보며 말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이요..


그때 우리의 파리로부터 1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우리의 파리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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