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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Mar 22. 2024

넝쿨째 굴러 들어온 당신(2)

넝쿨째 굴러 들어온 당신(2)

드디어 막을 연 우리의 파리,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비행기 이륙과 함께 잔뜩 들뜨기 시작한 나였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신디도 신이 난 듯했다. 이륙하기 전, 나는 잔뜩 신난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자기야~ 이리 와"


신디는 내 어깨에 기댔고, 나는 폰을 들고 우리를 찍기 시작했다.


찰칵~


웃어~ 결국 남는 건 미소뿐~ 차가워 보여도 실은 그 누구보다도 똘끼 충만한~~ 우린 돌아이 커플~

자기야 그거 알아? 사주 선생님이 그러는데, 내 사주엔 돌아이들이 잘 맞는데~ 고로 자긴 돌아이라는 거지~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나 돌아이야?"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응~ "


돌아이가 돌아이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는 거지~


박장대소하던 우리 둘. 순간, 신디가 나를 바라보고. 나도 그녀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로에게 가까워오던 찰나 우리에게 다가오던 한 남자. 내 옆자리인, 창가 쪽 자리에 앉으려 했고. 이에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비켜드렸다. 그리고 시작된 고요의 시간. 침묵의 아우성. 그 절규와 함께 나는 얼른 이번 여행에서 일정이나 비행 편 등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우리의 비행을 맡은 항공사는 Vietnam Airlines로 베트남을 경유하여 파리로 가는 항공편을 선택했었다. 그래서, 인천에서 18시 5분쯤 출발. 베트남에 20시 30분에 도착. 베트남에서 23시 45분에 다시 출발해서 오전 7시에 파리에 도착하는 루트로 표를 샀었다. 그리고 좌석은 이. 코. 노. 미로..


안다, 무모했다는 거.. 당시 나는 예상치 못했다. 아니, 감히 가늠을 할 수 없었다. 10시간 정도? 되는 비행시간이 상상이나 되었을까. 기껏해야 일본이나 대만 정도밖에 안 가본 나였는데. 10시간? 당시 난 이런 생각이었다.


신난다~~~ 비행기에서 기내식 3시 3끼 먹는 거잖아~~~ 얼마나 신날까~~~


반면, 신디는 내내 이런 말을 했었다.


"자기야,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라랄라라~~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한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비즈니스석을 외치는 그녀에게 당당히 말했다. 우리가 돈이 어딨어!!! 안돼 안돼!!!! 그러나, 겪고 나서야 그녀의 절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노아는 떠올렸다. 놈들에게 지배당해 왔던 공포를... 비행기 속에서 갇혀 살아야만 했던 굴욕을..


처음은 좋았다. 신났지. 비행기를 탄다는 건 늘 설레는 일이니까. 멀미약들과 의자, 창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곳이 곧 무릉도원~ 그러나 우리의 사랑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닳아져 뿌예지듯이.. 초심이 증발한 자리에는 지루함과 뻐근함만이 남아있을 줄.. 이때의 나는 몰랐었다..


아무튼, 위 사실을 몰랐던 당시의 나는 너무 설렜었다. 헤드셋도 주고, 담요도 받은 나는 담요를 덮으며, 헤드셋을 끼고 앞 좌석 뒤에 붙어있는 화면 속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한 영화를 다 봤던 쯤이었을까? 그때 헤드셋을 벗고 창 밖을 바라보았는데, 아니!!!! 아니!!! 그만, 적빛 하늘이 드리운 광경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잃은 나는 얼른 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감상에 젖어들고 말았다.


난 너를 보았다. 지금 우리에게 쏟아지는 노래 선율에 웃으며 앉아있는 너. 하늘에 울려 퍼지는, 붉은빛에 적셔지는 네 얼굴을 보며 문득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이에 조그만 쉼표 하나가 이제 익숙해지고,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던 길 한복판에서 난 너에게서 찬란한 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동시에 태양이 곧 저물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에필로그에 가까워짐을 너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네가 이제 과거의 부스러기가 되어가 바스러져가고 있는 모습을 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해"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깝게 다가와 스며들고 있었다. 그 향기에 취해 순간, 시공간이 멈춰지며 밤이 되기 전 에필로그의 순간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예술 세계에 빠져 다음 사진을 찍으려던 찰나, 내 옆자리 남자의 콧날이 찍혀버린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내가 창밖 풍경을 찍으려 할수록 창가 쪽에 앉은 남자가 찍힐 수밖에 없었다. 찍히는 거뿐이었을까. 접촉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죄송함을 말하려던 찰나에 아저씨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저녁노을이 예쁘죠? 어서 찍으세요~




네.. 너무 예뻐요.. 사랑이란 게 실체화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아저씨 마음처럼.. 앗... 죄송해요.. 


똑똑..


누구세요?


노아예요~


노아니? 너는 노크를 할 필요 없단다~


노크도 없이 스며들듯 자리를 비켜주신 아저씨. 덕분에 많은 사진들을 담을 수 있었고. 그의 사연들도 담을 수 있었다. 달달함이 귀 한가득 채워져 감이 느껴지는 순간순간, 동시에 피로 한 움큼과 낯가림 한 스푼..


아저씨, 저 한도 초과 되었어요.. 자상함 한도 초과..


어디 여행 가냐부터 이름 모를 한국 영화까지 추천해 주시는 등의 자상함을 내게 보여주셨던 아저씨. 하루 대화 할당량이 정해져 있는 극 I인 나로선 그 할당량이 채워진 순간.. 피로를 느끼지만, 그 피로를 다른 달달함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아저씨, 달달함이 차오르고 있어요.. 


이 달달함은 저 붉은 노을과 함께 타오르고.. 덩달아 내 시간까지도 타오르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의 밤은 깊어져만 가고 있었...??? 멘트가 이상한데?


아무튼, 우리.. 우.. 아니, 신디와 나는 파리 가기 전, 잠시 경유하는 베트남행 비행기에서 저녁 노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린 몰랐다. 이게 시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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