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파괴하지 않으면 결국 결말은 계란 프라이가 될 뿐이다..
유럽..
나에게는 너무나 낯선 단어였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머나먼 세계라고 생각했다. 내가 파리를? 감히, 간다는 꿈도 못 꿨었으니. 마치 텔레비전 속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살면서 저곳을 내가 가볼 수 있을까? 에 그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스스로를 틀 안에 가뒀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유럽으로 가는 데에 조건이 필요하나?
외국에 가면 절대로 한국 음식 생각 안 할 사람? (나잖아?)
한눈팔다가 소매치기당하지 않을 사람? (나잖아?)
야경을 바라보기만 하면 감성 충만해지는 사람? (나잖아?)
내가 돈 벌어서 모으고 내가 가겠다는데~~ 그 누가 뭐라 할쏘냐!!! 그러나, 아직은 실감이 안나는 나였다. 내가 유럽이라고? 파리라고? 파리? 내가 파리를? 이런 생각들을 계속하면서 인천공항행 버스에 있었던 거 같았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있다가 도착!
공항 1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바로 해야 할 일들과 당부 사항, 일정 등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 공항 가자마자 찾아야 하는 것
뮤지엄 패스
유심칩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 탓에. 행여나 못 챙기면 어떡하지란 걱정과 책임감에 위 두 개만 생각했던 거 같았다. 위 두 개는 각각 와그와 말톡으로 이전에 예약했었다. 뮤지엄 패스의 경우, 신디의 말로는 루브르 박물관이나 기타 등등의 시설에 들어가는데 프리 패스 개념? 자유 이용권? 비슷한 거라고만 들었다. 그런 걸 굳이 해야 하냐?라고 신디에게 묻기도 전에, 느껴지는 침묵의 레이저. 그리고 어김없이 이어지는 어느 봄날 나의 음성.
"자기야~ 예약했엉~"
뮤지엄 패스는 비교적 쉽게 예약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유심칩이었다. 뭘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스마트폰이 내건 구형이었기에, eSIM이 적용이 안 되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찾고 찾다가 말톡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우리의 경우에는 아래의 링크에 나온 유심칩을 이용했다.
어떤 걸 골라도 상관없을 거 같긴 한데, 노란 조명에 은은하게 빛나는 루브르 박물관 모습이 내 감성을 후벼 파는 바람에 나는 이 상품을 골랐다.
수령 방법은 인천공항에서 수령하는 방식으로 선택했고, 수령 일시는 당일이었다.
수령처는 몇 터미널인가에 따라 다르긴 한데, 우린 제1터미널이었어서 일반지역 3층 중앙 H라인 CU 편의점 옆 북스토어였다.
거기가 어디야?라고 수령 전에 의심하고 잔뜩 겁먹었던 나였지만, 크게 알파벳이 적혀있는 각 라인들을 따라 H라인을 찾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는.. 상황이.. 수령처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그 어느 하나라도 준비되지 않으면 여행 못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란, 마치 외계 문명을 곧 접하게 되는 조선 시대 한 선비의 마음이었달까? 마냥 두렵고 무섭고, 그러나 설레고 궁금하고. 서로 상반된 감정들이 내 안에서 마치 휘감아져서는.. 내내 울렁거리게 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신디는 계속 영어로 나한테 말 걸고.
"Iam on my way to the airport"
한국말로 해. 여기 아직 한국이야!
"Let's meet there or we can check in."
그래 너 영어 잘한다~~~ 잘해~~~ 뿡이다~~
파리 여행하는데 거기 가서 외국인들에게 말 걸고, 알아들으려면 조금이라도 영어로 프리토킹하자는 여자친구의 크나큰 뜻이었다는데.. 역시, 나의 신디~ 신디 앞에서 나는 언제나 바보 온달~ 그대는 나의 평강공주. 그 거룩한 뜻, 잘 알겠구.. 고마워.. 그리고 나의 대답은 이거야.
나에게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그 뜻 고이 접어 사건의 지평선으로~
수령한 유심칩과 뮤지엄 패스를 휴대한 채, 기다린 나. 이윽고, 그녀와 마주하게 되고. 나는 그녀의 복장에 놀라고 말았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옛날 샛노란 민방위 복장을 연상시키는, 그녀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잔뜩 부풀어있는 작업 복장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의 시선은 창 밖 너머로. 우리 사이도 흔들리는 저 창 너머로. 나는 애써 내 안에 일렁이는 질문을 삼키고 흔들리는 동공 너머, 살짝 장난기 10% 섞인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야~~~ 우리 자기~~~ 패션 리더여~~ 봄이 어디갔나 했는데 여기 있었네~"
그런 나의 말에 그녀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자기야, 봐.."
하면서, 잠바 안에 크로스로 멘 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던지는 회심의 한마디.
자기야, 소매치기 안 당하려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복장을 해야 하는 거야. 알겠니? 현지인처럼~
아...
스승님...
순간, 그녀의 뒤에 드리운 후광에 나는 그만 앞을 볼 수 없었고. 나의 부끄러움이 그녀의 후광으로부터 새어 나와 나를 적시고 있었다. 또 이렇게 깨달음을 주시는군요, 스승님이시여.. 그대만 따르겠나이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그저 종종종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고 예감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 내내 그녀의 리드가 이어지겠구나~ (멋있당~~~헤헤)
표 끊고, 짐 맡기고. 그녀의 리드에 아주 기나긴 면세점 쇼핑을 한 후, 탑승 게이트에 도착! 우리의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이 상황을 잔뜩 만끽하고 있었다. 이곳에 다다를 때까지, 그 어느 순간 하나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했고 설렜다..
시간이 춤을 추듯이 그 움직임 하나하나 들뜨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그 순간마다 하늘하늘 대기를 무대 삼아 떠다니는 선율 따라 내 마음도 일렁거리고 있었다. 자유로이 천천히 떨어질 듯이 떨어지지 않는, 지금 이 기분. 그 시간 속에서 나와 함께 있는 너. 너와 나, 우리 둘로 가득 채워진 세상 속에서 가냘픈 나뭇잎처럼 갈 곳 잃은 설렘의 방황을 겪고 있었다. 동시에 안락하고 따스한, 방황의 품 속에서 퍼져나가는 온기.
그 온기에 감싸진 채, 우린 창 밖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비행기를 타고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기대한 채, 그렇게 한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