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지나서..

by 노아

그날 이후, 내 현실은 닫혔고. 나만의 세계에 갇힌 채, 수많은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그리워하는지, 그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분간을 하지 못할 정도로, 1000개가 넘는 블로그 포스팅과 수백 편의 시를 써내려가는 등 무수히 많은 여정을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자리해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런 나날이었다.


동시에 그 시절 속 그녀와 무수히 많은 대화를 나누고는 했었다. 그 시절, 그녀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며 수차례 시뮬레이션 해보며, 그시절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있는 숨은 뜻을 찾아내보고, 그런 그녀에게 내가 했던 언행을 돌이켜보며 반성을 끊임없이 하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알 수 없었던 단 한가지.

“나를 밀어낼 정도로 힘들었을 그녀의 심정”


그 어떠한 시뮬레이션으로 상상을 해봐도, 감히 나로서는 그 숨어있는 슬픔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신디가 보였던 모습. 그리고 그 직후 쏟아졌던 신디의 눈물과 나를 놔줘야 하나.. 라고 말했던 모습. 그러한 그녀의 시퀀스를 곁에서 내내 지켜보다 문득 세레나가 떠올랐다.


그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거 같았다.


“세레나 씨도.. 이런 슬픔을 가졌겠구나..
그때, 이 울분과 슬픔, 미안함 그 모든 감정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구나..
이런 아픔이었겠구나..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그때, 날 향해 활짝 지어주던 그 미소, 살며시 내 손을 포갠, 네 따스함. 그 따스함에 일순간 온 세상 가득 메워가 내 시간을 채워주었던 너. 그때의 나는 몰랐었다. 그 시간마다, 네가 나에게 주었던 모든 것들은 네 마지막 남은 시간을 태워 희미하게나마 남았던 네 미소였음을. 가을의 눈물을 지나 겨울의 앙상함만 남아버린 네 시간과 맞바꾼, 어느 화창한, 영원의 봄날이었음을.


비로소 그날, 그녀가 했던 언행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뒤늦게서야 깨달은 지금, 그녀는 없었다. 그래서, 이에 나는 불현듯 남산골 한옥마을로 향했다. 그녀와 함께 여러 대화를 나눴던 그곳으로.


오랜만에 방문한 남산골 한옥마을. 지금, 내가 들이쉬는 공기 가득 메웠던 그리움과 외로움, 추억을 마주하면서 그때 그 거리를 거닐었다. 가만히 거닐다가, 함께 앉았던 그 벤치에 앉아 초록색 조명의 남산타워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내 귓가에는 “한참 지나서”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남산타워를 보며 세레나에게 말했다.


“제가 남산타워에 얽힌 재밌는 얘기를 한다고 했잖아요~ 저는 남산타워만 보면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가 떠오르더라구요. 어느 남배우 때문에 이제 볼 수 없지만요.. 아무튼, 드라마 엔딩을 보면, 남산타워 앞에서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만나는데, 그 여운이 남더라구요..”


그리고 세레나를 보며,


“옥탑방 왕세자라는 작품 작가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내가 그만 죽고 말았대요..


그 작가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몇 년을 절필하셨대요..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쓴 작품이 옥탑방 왕세자였대요..


이번 생애에는 이렇게 이별하게 되었지만,


다음 생애에는 다시 만나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작품을 썼대요.

그래서 그 작품을 보면 특유의 그리움이 느껴져요..”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그녀의 귀에 에어팟 프로 한 쪽을 꽂아주면서,


“그 작품 ost인데, 그 감정이 느껴지죠?”


우린 그 ost를 들으면서 남산타워를 같이 바라보았다.


마주보며 나누던 얘기들
우리둘만 알았던 얘기들
지울수없나봐 버릴순없나봐 잊지 못하나봐
오랜만에 둘러본 거리들
이길을 지날때면 좋아했던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발길을 멈춘다

한참 지나서 나 지금여기 왔어
그때가 그리워서 모른채 살아도 생각나더라
그런 너라서 자꾸눈에 밟혀서
함께 보낸 시간들 추억들도
별처럼 쏟아지는데 넌 어떠니
행복해만 보이는 사람들
나만 혼자 외로이 남은 것만같아서
아닌 척해봐도 니생각이난다

한참지나서 나 지금여기 왔어
그때가 그리워서 모른채 살아도 생각나더라
그런 너라서 자꾸눈에 밟혀서
함께 보낸 시간들 추억들도
별처럼 쏟아지는데 눈물이나
여기서널 기다리면 볼수있을까
그땐말해줄수있을까 이런내 마음을
보고싶어서 더보고싶어져서
그런 나라서 난 너밖에 몰라서
너없이살다보니 모든게 후회로 가득하더라

니가없어서 허전한게 더 많아서
오늘도 발걸음은 이자리가 그리워
가지못하고 불러본다


그때는 같이, 지금은 혼자가 되어, 그시절, 우리가 같이 들었던 “한참 지나서”라는 곡을 들으며 멍하니 남산타워를 바라보았다. 깜깜한 밤하늘 아래, 아늑해져가는 그때 그 기억. 그녀의 음성과 우리 모습들. 순간,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와 닿으면서 먹먹했다.

지금 이 순간, 내 옆에는 그녀의 숨결 조차 없지만, 무언가가 내 옆에 가득한 기분이 들었다. 옆을 돌아보면 공백 뿐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오랜 시간, 슬픔마저 다 날아가 그리움만 희미하게 남은 듯 했다. 그때 이 자리에서 내 옆에 앉아있던 그녀와 내 모습이 인서트로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가득함과 공허함이 공존했던 마음 모를 순간이었다. 감정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무언가.

나는 흐릿해진 그녀의 기억을 보며 말했다.


“미안했어. 그때 나는 네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어. 내 감정만 신경썼지.. 널 배려하지 못했어. 단지 그때 난 널 간절히 붙잡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널 못 볼거 같아서 그랬던 거야..”


돌이켜보니 그때 너는 이미 세상을 알았고. 나는 몰랐었다. 그때의 너는 상처를 이미 입었던 사람이었고. 나는 그 상처의 깊이를 알지 못했을 정도로 어렸었다.. 그당시 우린 타이밍이 아니었을 뿐.. 그뿐이었는데.. 바보같이, 그때의 난 그걸 모르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홀로 이곳에서 눈물 흘리며 남산타워를 바라보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사랑을 하면 안되는 사람인가봐.. 내가 간절히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하면, 전부 떠나..”


나는 나를 보았다. 그시절 내 모습을 보며, 그런 그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녀 잘못도 아니야.. 그냥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에필로그가 빨리 찾아왔을 뿐이야..


지금 네가 흘리고 있는 눈물은 내가 닦아줄테니, 넌 곧 네 앞에 나타날 그녀가 흘릴 눈물을 닦아주기를..


언제나 하이톤으로 널 반겨주며,

차가 없는 내 곁에서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집을 사주면서 따라고 말하주는,

도로주행을 4번 떨어졌어도, 그때마다 날 위로해주는

그냥 내가 기뻐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며 양복 한 벌 맞춰주는

자신의 감정이나 아픔보다도 내 아픔을 먼저 걱정해주는


그런 여자를 만나게 될 거야..


그 여자가 흘릴 눈물을 닦아주면 돼..”


한 시대의 종착역에서 갑자기 생각난 단 한사람. 신디가 너무 생각났다.


분당 스카이캐슬에서 오열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내 생을 다해서 이 여자를 지켜줘야겠다..”


이별과 결혼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던 나에게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그렇게 단칼로 끊어내는 거 아니다.
힘들 때일수록, 그 누구보다도 힘들어하고 있을 그 사람 곁을 지켜줘야지.”


순간, 신디가 보고 싶었다..


신디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 이에, 난 신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디, 지금 만나자..”


바로 나는 신디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립고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그녀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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