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run

by 노아

“신디, 나중에 말이야~ 우리의 연애나 결혼을 부모님이 반대한다면 어떨 거 같아? 서로 사랑하는데, 헤어질 수밖에 없다면..”


...


“슬프겠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타이밍이 아니었구나.. 하고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고. 아니라고 해도, 행복한 추억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할 거 같아~


그런데 노아~ 우리가 헤어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럴 거라고 나는 믿어~!”


나의 시간은 그때 이곳에 있는가? 아니면, 지금 저곳에 있는가?
이곳이 찰나에 증발해 버린 과거가 되어있지는 않던가..

곧바로 나는 충무로를 벗어나 신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시련과 역경. 그 장애물에 그때처럼 주저할 것인가? 아니면, 맞설 것인가? 다시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용기를 줘.. 나 혼자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 무서워..”


똑같은 듯, 똑같지 않은 지금. 그녀는 지금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내 곁에서 내 기분을 먼저 생각하는 그녀였다. 내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이기에, 이미 그녀는 나에게 답을 주었었고. 나는 그걸 몰랐던 게 아닐까.. 이에, 달려가고 또 달려갔다. 충무로를 지나, 지하철로. 어느 노선에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면서 내내 신디 생각뿐이었다. 지난날 우리의 시간이 영화 속 한 시퀀스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우리, 무슨 사이예요?”


신촌 거리에서 밤공연을 보면서, 화려한 조명 아래에 공연에 집중하는 사람들 틈에서 내 손을 잡은 채, 나에게 속삭였던 그녀의 한마디. 그런 그녀를 보며, 당시 내가 꺼냈던 한마디.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하는 사이요.”


그리고 납골당에서 흐느끼는 그녀를 안으며 다짐했던 당시 내 모습.


“내 생을 다해서 이 여자를 지켜줘야겠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떠오르면서 조급해지는 내 심정과 달리, 더디게 가는 열차 속도였으니.. 하차하자마자, 신디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내 귓가에서는 이클립스의 “Run Run”이란 곡이 흐르고 있었다.

Run run 내 옆에 너를 안고
Run run 넘어져도 Start again
끝없이 펼쳐진 하늘 위로 Fly forever
이대로 달려갈게
I Run 거친 바람을 가르고
...
희망을 향해 뛰어 자유롭게


마치, 내가 선재가 되기라도 한 듯이 이대로 주저한다면 그때처럼 또다시 영원한 이별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내 판단에 그때처럼 지금 이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내 간절함으로 가득했던 거 같았다.


내 행복은 언제나 찰나의 순간과 그 이후 영원의 기다림이란 나날이지만.. 그래도 그 찰나의 순간이라도 행복하고 싶어. 나 이곳에서 그 추억과 여운 속에 갇힌다 해도, 그 짧은 순간이라도..


분명, 예전의 나는 이런 생각이었으나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찬란한 봄날에 있었음을. 그 봄날 속에서 혼자 겨울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 겨울은 그녀가 불어온 게 아니라, 정작 내가 키우고 있었음을..


“노아, 어디쯤이야?”


그리고, 멀리서 신디가 보였다. 이에, 멀리서 신디가 보인다. 작고도 작지 않은 그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를 본 나는 바로 달려가 그녀를 안으려 하고. 나의 포옹과 함께 외치는 한마디.


“내가 잘못했어~! 우리, 같이 이겨내 보자! 우린 이겨낼 수 있어! 함께라면~~”


그러면서 신디, 눈물 흘리며 감동~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사랑, 끈끈함! 다져지는 사랑!


.

.


아 그러나, 보인 건 신디의 하품하는 모습이었고.


“아... 신디??”


눈이 반쯤 감겨있었던 신디의 모습이었다.. 이에, 하이틴 로맨스풍 분위기에서 급 식어버린 나.. 이에 너무 어이없었던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잠을 설치고 설치다 잠깐 잠들었나 봐.. 그런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 아니.. 뭐.. 아무 일 없었어.. 그냥..”


나 혼자 오버했나 봐..

혼자 하이틴 로맨스 찍고 비련의 주인공병 걸린 채 분위기에 취해 있었나 봐.. 잠시 나 취했었나..? 순간 김이 확 새 버려서 허탈하고도 허무한 이 기분.. 그러나 그런 그녀를 잠시 보며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늘 나에게 신디는 그런 존재였다. 내가 여태까지 진리이자 사실로 여겼던 세상을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 내가 알았던 세상은 나 혼자만 전부인양 착각하고 의미 부여했던 편견이었다는 걸 끊임없이 알려주는 존재...


예전에 어떤 분이 나에게 말했었다.


“내가 지금의 아내하고 내가 전에 사귀던 사람하고 갔었던 장소에 간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지금의 아내 하고 가니까, 그때 그 사람과 같이 갔었던 게 지금의 아내로 덮어지더라..”


한때의 연인과 함께 했었던 장소를 지금의 연인과 함께 가면서 그 추억을 덮는 다라.. 이에 나도 내 추억의 장소에 신디를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 나의 지난 추억을 덮지 못했다. 다만, 그때 내가 보지 못했던 걸 알려주었다.


“자기야~ 여기는 어디야? 빈티지 샵인가 봐~”


3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NPC 같은 존재. 그 긴 시간,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장소, 존재들을 그녀는 매번 찾아내서 나에게 알려줘 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마다 내가 들었던 생각은

그 긴 시간, 어떻게 보면 나는 내 마음과 기억에만 신경 썼었고. 주변에 대해 1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구나.. 였다. 낙산공원에서 한양성곽을 따라 거닐었던 우리. 그때, 한 샵 앞에서 창문 안을 들여다보던 그녀가 뒤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자기~~ 여기 한번 들어가 보자~”


순간, 그녀에게서 어떤 아우라를 느꼈었던 적이 있었다. 구시대가 지나고, 새 시대가 도래함과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가치와 세계관으로 재정립되는 과도기가 안정기에 이르게 되는 사건. 매주 왔었던 이화동 하늘정원길. 나에겐 아련함과 기다림의 정서가 짙은 곳이었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 그런 감성들이 들 때마다 내가 찾았던 곳.. 나의 세계.. 그 세계로 그녀가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서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내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녀는 지난 내 세계를 덮지 않고, 오히려 포용해 주며 새로운 세계를 제안해 주는 존재구나.. 그렇게 다채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게 만드는 사람이구나..


그래, 신디는 이런 존재였지.. 어쩌면, 내가 최근 생각했던 것들도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은 것을.. 나는 신디의 손을 잡은 채 말했다.


“우리 결혼, 결코 순탄하지 않을 거야. 생각지도 못한 배신에 상처받게 될 수도 있을 거야.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좌절할 수도 있을 거고. 그래도, 나는 너 없으면 안 될 거 같아. 그래서 너만 괜찮다면 나는 끝까지 가보려고 해. 너도 같은 생각이야?”


이에 신디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나는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같이 가보자! 다시 시작하자!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자!”


“그래~ 노아~ 사랑해~”


“나도 사랑해~~ 신디~”


그렇게 우리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근데 우리 플래너 빨리 구해야 하지 않니?”


그리고 그다음 날, 우린 철의 여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 여인으로 인해 장차 우리에게 여러 차례 닥칠 재앙들이 매번 극복될 것임을.. 그때의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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