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자리만 걸어도 자란다
아침에 눈을 뜨자 입술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간지럽고 따끔한 게, 손을 대니 오돌토돌한 수포가 느껴졌다. 어제 여덟 시간을 쉬지 않고 수업했더니 몸이 먼저 나에게 신호를 보낸 모양이었다. 체력이 조금 떨어진 건 알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일 줄은 몰랐다.
나는 요양보호사교육원 강사가 되었다. ‘되었다’라고 쓰면 뭔가 대단히 완성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정말 내가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이 자리를 얻기까지 나는 여러 번 나를 설명해야 했다. 잘해보고 싶다고, 준비되어 있다고, 기회를 주면 증명해 보이겠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꼭 누군가에게 쓸모를 허락받고 싶었던 사람 같다.
나는 원래 말로 전하는 일을 좋아했다. 학생 때도 고개를 돌리는 친구들을 대신해 발표를 도맡았고, 교직을 이수하면서는 더욱 가르치는 일에 마음이 끌렸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말로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좋아하는 일'과, '다시 시작하는 '일'은 많이 다르다는 걸, 강단에 좀 서보고 나서야 알았다.
학생들 앞에 서는 그 순간만큼은 나는 ‘경력단절을 겪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능숙하게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의 시간을 책임지는 사람. 그 사실은 감사하지만 때로는 벅찼고,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무서워졌다.
수업을 준비하던 어느 날, 예상 질문을 적어 내려가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지금 수업을 준비하는 걸까,
아니면 나의 자격을 준비하는 걸까.
학생의 질문에 혹시라도 머뭇거리면?
혹시라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금세 알아챌 것 같았다. 내가 아직 조금은 덜 준비된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수업 준비만큼은 미루지 않았다. 잘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수업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장면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내가 놓친 질문은 없었는지, 표정은 어색하지 않았는지, 괜히 과하게 설명한 부분은 없었는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났다고 생각했던 날들 사이사이에 이런 밤들이 끼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현실의 피로가 몸으로 나타났다.
“강사님, 오전에는 생기 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좀 지쳐 보이세요.”
들켰다. 괜찮은 척을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모양이었다. 사실이었다. 자신감은 강사의 기본이라 믿었지만, 요즘 내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학생들이 남겨준 말들은 분명 따뜻했다.
“오늘 정말 필요한 내용을 알려주셨어요.”
“어쩜 이렇게 잘 가르쳐 주세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난 칭찬보다 실수 하나가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왜 그 질문에 그렇게밖에 답하지 못했을까.
수업 전에 한 번만 더 정리했더라면 어땠을까.
괜히 아는 척한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 끝에는 늘 같은 문장이 남았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강사일을 시작했다고 해서 곧장 진짜 강사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사람에 가까웠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지금의 나보다 조금 앞서 있었다.
마음이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수업을 놓지는 않았다. 수업 중에 종종 펼쳐지는 장면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잡은 펜이 어색할 법도 한데, 시험에 떨어지면 자식들 보기 부끄럽다며 눈을 반짝이던 나이가 지긋한 학생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툰 기색을 감추며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저녁을 준비하다가 아이 책 표지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기죽지 말고 너만의 빛나는 장점을 찾아봐.’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괜스레 웃음이 났다.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사실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구나 싶어서.
나는 아직 선배 강사들처럼 능숙하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대신 나는 수업 하나를 끝내고 나면 그날을 몇 번이고 되새기는 사람이고, 질문 하나에도 잊지 않고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의 장점은 대단한 재능이 아니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열심’ 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매일을 무사히 마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채로. 그렇게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나는 조금씩 중심을 잡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강단 앞에 선다. 같은 자리에. 제자리 같지만, 어제의 나와는 조금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