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엄마말이 맞았다는 것

1부 제자리만 걸어도 자란다

by 애순희

나는 자매만 있는 집의 맏이었다. 어스름한 새벽, 직장을 다니셨던 엄마는 늘 내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무섭지는 않았다. 눈을 비비며 엄마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서면, 사과 껍질을 한 번도 끊지 않고 이어 가는 아빠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건 내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세계였다. 그래서 남자라서, 여자라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양보나 물러섬은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사정과 능력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학교도, 내가 처음 발을 디딘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살자’ 같은 표어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 그리던 세대라, 성별과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잘하면 인정받고 못하면 조금 늦게 가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그 믿음은 꽤 오래갔다.


다만 한 가지. 엄마는 늘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나중에 결혼하면,
네 아이는 네 손으로
직접 키우는 게 좋아.


아주 어릴 때는 엄마말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조금 커서는 아이를 직접 키우라는 조언인지 당부인 건지, 아니면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 말은 언제나 단정했지만 그게 무엇을 대신해야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엄마가 그랬듯 나도 계속 일하며 살 거라고 믿었고, 엄마가 말한 ‘직접 키운다’는 상황이 허락되고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 건 아이의 체온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던 어느 새벽이었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놓으며 자연스럽게 아이는 오롯이 내 손으로 키울 수 있었다. 엄마의 바람, 그대로였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천식이 있는 아이였다. 예민한 기관지 탓에 한 달에 한 번씩은 기침과 고열로 일주일이 넘게 꼬박 열보초를 서야 했다. 그러고 나면 나도 또 일주일을 꼬박 앓았다. 남편도 함께 마음을 졸이며 손을 보탰지만, 그도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었기에 결국 그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매달 반복해서 치러야 하는 당사자는 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밤새 열을 재며 아이 옆을 지키던 시간들. 영영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시간 속에서 문득 생각했다. 엄마도 이런 밤을 혼자 버텼을까. 나를 키우며, 말없이.


그제야 엄마의 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족하다고만 느꼈던 내 배경은 엄마가 그토록 발버둥쳐 지켜낸 (아빠도 함께 버텨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단단한 둥지였다는 것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깜깜하고 긴 시간 동안 엄마가 나를 지키며 보낸 숱한 시간이 있었음을, 나는 엄마가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내가 얼마나 철없는 딸이었는지도.


결혼을 하고 ‘시댁’이라는 곳을 마주하고 보니 여자라서 양보해야 하거나, 여자라서 더 해야 하는 일들이 분명 존재했다. 겉으로는 달라진 듯 보였지만, 돌봄의 무게는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엄마 세대가 버텨온 시간에는 아마 그것들이 더 노골적이었을 것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결코 직장만 다닐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직접 자식을 키우는 게 좋다는 엄마의 말속에는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아쉬움과 엄마로서의 사랑이 함께 담겨있었다. 그저 한 사람으로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 올린 성취감도 있었겠지만, 자식을 넘치게 살피지 못한 엄마의 마음과 그 무게를, 새벽을 지새우던 그 시절을 지나 이제는 워킹맘이 되어 조금 더 깊이 짐작해 본다. 어쩌면 엄마는, 자신처럼 나 또한 아이에게 미안해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며 보낸 그 시간을 ‘쉬었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냥 설명하기 편하고, 더 묻지 않게 만드는 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이를 키우고, 하루를 버티고,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며 보낸 시간들이 과연 비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그 질문을 나 말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조심스럽게 건네보고 싶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길 바란다. 그 말 안에는 노동으로는 계산되지 않는 수많은 하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삶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일을 하든, 그렇지 않든 여성의 삶은 늘 이어져 있다. 쉰 적 없지만, 쉬었다고 말해지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