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월급이 안들어왔다
계속 다닐지 말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경영진들이 노력을 하고 있으니 곧 정상화될 거다"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재직 중에 싸우는 건 쉽지 않다"며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그만두라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직원들에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줄 사람은 거기 없었다. 가끔 누군가 입을 열어도 순간을 모면하려는 달콤한 말들 뿐. 입사한지 얼마안된 뭘 모르는 나조차 보기에도 직원들이 기대하는 진실은 찾기 어려웠다.
답을 들을 수 없었던만큼 나도 점차 입을 닫게 되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조심스레 말을 아끼고, 상황을 살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는 사이 마음속에는 확신이 자리 잡았다. 이 직장은 내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란 사실을. 그런데도 “그냥 그만둬”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듣기 싫었다. 이미 내가 선택한 길인데 마무리조차 내 방식으로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달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건 연세가 많은 돌봄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분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다시 얻기 힘든 일자리였고, 또 다른이는 생계를 위해 버틸 수 밖에 없었다.
이 나이에 어디 가겠어, 그냥 참아야지.
그 분들의 짧은 한마디가, 긴 한숨보다도 더 무겁게 가슴에 내려 앉았다.
월급날이면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입금알람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6개월이 다 되도록 급여 한 푼 못받아도 행여 자식의 걱정거리가 될까, 제대로 된 도움 한번을 청하지 않고 속앓이만 하기도 했으며, 욱하는 마음에 퇴사해버리면 그간의 밀린 임금도 받지못할까 두려워, 발을 빼지 못하기도 했다.
올해 70이 넘었다던 미화부 여사님은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어놓고 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켰다. 낯선 노동 관련 용어가 쏟아질 때마다 몇 번씩 되묻다가, 끝내는 "제가 그냥 한번 직접찾아가겠습니다."라며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했다. 말 끝에서 묻어나오는 무력감은 곁에서 지켜본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상담원에게 친절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배려 없는 짧은 대화만으로도 얼마나 버겁고 막막한지 느낄 수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챙겨야 할 서류나 절차는 왜 그리 복잡한지, 직접 찾아가도 허탕을 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병원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점을 교묘히 이용해 급여 지급 순서를 조절했다. 쉽게 그만두지 못할 직원일수록 월급은 더 속절없이 밀려나갔다. 병원은 마치 삐걱이는 기계 같았다. 모두가 고장 난 줄 알면서도 그 사실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짧지 않은 시간을 가정에서 보내고 다시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하려 했던 나는, 프리랜서로 발버둥쳐온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저 오래 쉬다 나온 경력단절 아줌마로 여겨졌다. 경제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원하는 자리에 정규직으로 시작할 기회를 얻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매일을 고민하며 불안 속에 하루를 견뎠다.
그럼에도, 손에 들어온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그리고 다짐했다. 끝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지만, 힘이 닿는 한 계속해보자고.
기꺼이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끝까지 가보고 싶은 의지는 함께였다 .두려움을 외면하려는 나와, 그 두려움 앞에서도 눈을 감지 않으려는 내가 공존하고 있었다. 둘 다, 나였다.
그렇게 버티며 쌓아갔다. 경력도, 목소리도, 그리고 쉽게 빼앗길 수 없는 나의 권리까지도.
그것이, 내가 여기에 있어야만 했던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