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붙잡는 것들에 대하여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붙잡았던 것들은, 사실 타인의 조롱이나 비난, 깎아내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먼지 한 톨만큼의 무게도 지니지 못한 존재처럼 여겨버렸을 때였다.
아무리 무엇을 하고 발버둥을 쳐봤자, 결국 ‘먼지 더하기 먼지’일 뿐이라고 여겨버렸을 때.
전 세계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무한대에 가까운 정보와 발전, 끝을 알 수 없는 자본과 투자, 눈 깜빡할 사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연예계·정계·스포츠계·산업계 곳곳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들 속에 나는 나의 존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자주 압도당했다.
마치 내가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공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래서 이렇게 해서 뭐가 되겠어?”
“한 자락이라도 이게 바뀌겠어?”
하는 습관적인 자조의 트랙으로 빠져들었다.
그 자조는 앞으로의 투자나 심기일전을, 마치 비효율적인 에너지 투입이나 어리석은 일처럼 여기도록
나 스스로를 몰아갔던 것 같다.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열심히 애쓰고, 정을 주고, 노력해봐도 이 거대하고도 거의 무한한 세상 앞에서 애써봤자 나는 결국 ‘먼지 더하기 먼지’의 먼지 복제본밖에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먼지만큼인 게 그렇게 억울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먼지가 아니라 공룡만큼의 부피를 차지하며 온갖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주시받으며 살아가는
일종의 ‘어느 정도의 부피감’을 지녀야만 만족할 수 있는 게 인생일까. 그 부피감이라는 것도 어쩌면, 타인의 부피를 눌러내며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는데.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먼지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 소각되거나 자연 분해되어 결국 정말 ‘먼지’의 원자 정도로 돌아가는, 처음과 끝이 꽤나 또렷한 시간을 부여받아 이 공간 속에 존재하는데,
‘먼지 더하기 먼지’, 아니 그냥 ‘먼지’인 게 뭐 그리 대수일까.
그저 내게 허락된 이 시간과 공간과 환경 안에서 나는 가장 내 마음에 들게 꽤나 내 멋대로 구르다가 지내다가 가면, 그게 제일 아닐지. 따지고 보면, 광활한 우주 속 점만큼도 되지 않는 지구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우리, 혹은 비교에서 오는 도파민적 우월감이나 자격지심에 기대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천조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존재감이 0에 수렴하는 정도로 다 같이 먼지만큼의 부피도 차지하지 못하는 존재들 아닐까.
그렇게 오늘도 책상 위와 바닥에서 실컷 구르고있는 먼지들 쳐다보다 그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이 꽤 잘 뭉친다면, 꽤 멋진 먼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치 개똥벌레처럼 오늘도 먼지들을 꽤나 멋지게 뭉쳐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