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넘어 ‘만족’으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60점 기준으로 패스.
영주권 시험도 60퍼센트가 합격선이고, 웬만한 공인 시험 역시 60점을 기준으로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독일 회사에서는 인사 평가를 할 때 오히려 지나치게 고득점이면 ‘오버퀄리파이’로 보고 지양하는 문화도 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100퍼센트를 향해 과몰입하며 살았다. 적은 의자를 두고 경쟁하는 구조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차별점이 없으면 선택받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받기 위해, 그렇게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조금은 더 느슨하게, 60점짜리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척박한 환경과 굴곡진 역사를 거쳐온 한국인들에게 경쟁은 몸에 밴 상태였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었고, 그만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개인이 혹사되는 상태조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버텨왔다. 그 덕분에 말도 안 되는 기적과 눈부신 성취를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타들어가기 전에, 한 번쯤은 이런 선택도 가능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완벽하게 포장된 모습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판에서 벗어나 방사형으로 뛰어가며 나만의 것, 나만의 게임을 만드는 삶. 그 안에서 만족하며 지낼 수는 없을까.
어물쩡 허들만 넘고, 100점 중 나머지 40점의 공백은 애드리브와 순발력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 필기시험에서 벗어나, 실전에서 발휘되는 임기응변과 적응력,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신뢰로 부딪혀 살아가는 건 어떨까. 실제 능력으로 멋지게 퍼포먼스하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
혹은 그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굳이 100까지 완성해야 할 결핍으로 보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유 공간으로 인정해주면 어떨까. 각자 다른 맛과 향기를 가진 빈 공간으로, 각자만의 방식으로 꾸려가도록 놓아주면 어떨까.
아니면 아예 객관식 인생에서 벗어나, 아무도 감히 점수로 평가할 수 없게 인생을 주관식이나 서술형으로 바꿔버리면 어떨까.
앞으로는 누구의 눈에 들기 위해, 누군가의 채점 기준에 동그라미나 엑스표를 받기 위해 조마조마하며 사는 대신, 나만의 이야기와 서사를 한 땀 한 땀 써 내려가며 내 마음이 차오르고 흡족해지는 한 해를 살아보면 어떨까.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타인은 더 이상 점수조차 매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각자에게만큼은 이미 만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