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끝까지 함께할 '나'와 잘지내기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학교에서 지겹도록 남이랑 되도록이면 부딪히지 마라, 싸우지 마라, 사이좋게 지내라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누구도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라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도덕 책에서도 이웃과 사회, 친구들과는 다투거나 싸우지 않고 두루두루 서로 양보하면서 잘 지내고,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라, 분란 일으키지 말고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특히나 뉴스에서 험한 묻지마 피격이나 살인 사건이 보도되는 날이면 부모님으로부터 남에게 튀는 행동하지 마라, 미움받지 마라, 험한 꼴을 당해도 그냥 넘어가라, 되도록이면. 이런 가능한 ‘방어적’ 태도 및 ‘억울함을 겪어도 일단 넘어가라’는 안전한 태도를 교육받아왔다.
그러나 그런 ‘안전한’ 태도 속에는 어쩌면 내 안의 것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삼켜내야 했고, 꺼내놓으면 위험하니 가능한 숨기고 드러내지 말아야 했고, 그렇게 나는 나의 것들, 나의 생각들을 숨기고 감추고 ‘위험하니’ 땅을 삽으로 파서라도 묻어두며 ‘보호’해야 하는 삶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진짜 나는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꽁꽁 감춘 채 사회에서 별다른 충돌이나 눈치, 괜한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괜한 모난 모서리로 정 맞지 않기 위해 점점 닳아진 조약돌처럼 다듬어져 갔으며 둥그런 모양을 띠어 어디가 모서리였고 나만의 ‘각’이었는지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사회에서 둥글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잘못된 것은 서로 다른 모서리를 깎아내고 균일화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효율’만을 극대화하고 가치화시킨 사회의 모습이지 (당연히 한 방향으로 가야 사회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므로)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나 나의 ‘것’들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삶이라는 긴 시간을 완주하고 지내고 살아가려면 사실 끝을 알 수 없는 나의 생의 끝에서 끝까지 나와 같이 호흡하고 심장이 뛰어주어 나를 견인해 가는 것은 태어나서 마주하게 되어 구성되었지만 언제든 누가 먼저 떠날지 모르는 가족들도, 삶의 배경과 주제, 환경이 바뀌게 되면 언제든 바뀌는 주변 풍경들과 같은 이웃도, 소중한 시간과 시절을 함께 새기고 보냈던 정겨운 친구들도, 같은 프로젝트를 하며 서로 돕고 의견을 나눴던 동료들도 아닌 내 옆에 숨 쉬며 같이 남는다는 것은 ‘나 자신’인데도 그 누구도 나와 사이좋게 친하게 잘 지내면서 내 의견도 잘 들어주고 힘들면 토닥이면서 다독이면서 쉬었다가 가기도 하고 같이 뛰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고 오래가고 친근하며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라는 사실. 나만 아는 나르시시즘이나 나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게 나를 내가 소중하게 대하는 만큼 남도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렇게 나에게 잘하는 만큼 거기서 얻은 힘과 생의 의미, 기쁨과 에너지로 남을 채워주기도 하는, 나로 시작해 원형으로 확장되는 기쁨을 결국은 거울처럼 반사되어 다시 또다시 누리는 것.
외부는 타인의 마음, 날씨, 천재지변, 자연환경과 시대적 주제와 가치가 이끄는 견인으로 매순간 수도 없이 많이 바뀌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지만 나의 마음과 나의 풍경, 나의 주변 환경과 나의 시간, 나의 하루 정도는 내가 스스로 엔진이 되어 디자이너처럼 이렇게 아니면 또 저렇게 디자인도 하고 기획도 하며 ‘배치’할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나라는 친구랑 상의도 하고 의견도 나누고 조율도 하면서 나의 각을 세우기도 했다가 또는 깎아내기도 하는 것.
이것을 알고 난 후에는 나는 ‘나’님에게 더 잘 보이려고, 피곤하다고 하시면 자리에라도 뉘여 드리고, 드시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면 얼른 준비해 대접해 드리고, 가고 싶은 곳이나 입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면 최대한 맞춰 드리면서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니 오늘도 겁나게 잘 부탁합니다 ‘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