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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Dec 08. 2021

LED 불멍

#벽난로#LED 전등#크리스마스 선물#따듯한 겨울


"엄마, 벽난로 사 가요."

핸드폰으로 딸아이의 들뜬 음성이 들려온다.

벽난로를 사 오다니, 또 무슨 신기한 아이템을 구했을까? 

궁금증이 인다.


일 년에 두어 번씩은 시골에 사는 동생 집을 방문한다.

답답하고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 푸르고 시원한 경치를 보며 맑은 공기를 마실 때면

숨이 깊이 쉬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마주한 산의 푸르름을 함께 마시는 그 기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도시 생활에 젖어 시드는 내게는 가끔씩 접하는 시골 풍경 하나하나가 가슴 저리게 푸근하다.


그렇게 가슴 시원한 시골 체험(?) 중 제일 좋은 일은 불멍 때리는 일이다.

왜 불멍은 때린다고 했을까? 

멍 때린다는 말이 바보 같다는 느낌이 살짝 묻어 있는 듯 느껴지는 말인데...

붉게 하늘로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눈의 초점이 풀리고, 

입은 살짝 벌어지며 모든 동작이 느슨해진다.

몸이 따듯해져 옴에 따라 마음도 긴장이 풀려 흐물흐물(?) 무장해제가 되곤 한다.

저녁 한잔 술의 여운이 아니더라도 

모닥불은 이상하게도 모두를 그렇게 무장해제 시키고 또 안심시킨다.

따듯한 열기를 받는 온몸의 세포들은 원시에서부터 가져온 본능적 안온감을 깊이 느끼는 듯하다.

그 안온감 때문인지 부산하게 머릿속을 오가던 온갖 생각들이 사르르 녹아 사라져 버린다.

주위는 조용하고, 따듯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듯 

삶의 충만감이 가득 차오른다.


신기하게도 불꽃은 바라보아도 바라보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다.

화염은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타오르지 않는다. 

언어로 그 색을 표현할 수 없지만, 빨갛고, 노란, 주황의 불꽃 속에 푸르스름하고 하얀 화염의 눈.

그 환상적인 조합의 불꽃은 내 안의 모든 생각을 태워서 

어둠 속으로 날려버리고 이내 가슴을 텅 비게 만든다.

그렇게 빈 가슴으로 생각의 끈을  풀어놓고 나는 멍하니 바보처럼 앉아 있게 된다.

그래서 '불멍'인가...


환하게 어둠을 밝히는 불빛을 보고 불나방이 떼로 모여들어 모닥불 주위를 맴돌다

하나둘씩 타오르는 불속으로 뛰어든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을 던지며 불로 뛰어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허리를 비틀듯 춤추며 타오르는 불꽃이 나방들에게는 생명을 던질 만큼 고혹적인 것일까.

하긴 타오르는 불꽃을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면 

나 자신도 그 불꽃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빨려 드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도 한다.

그만큼 불꽃은 모든 생각과 분별을 녹여버리고 홀린 듯 뛰어들게 하는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밤새도록 불을 때고 앉아 있으면 모든 세상사가 

불나방처럼 화염에 휩싸여 타올라 짙은 어둠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아, 이것이 불멍이 주는 선물이구나!

온몸과 마음이 차갑고 불안한 긴장감에서 풀려나 

따듯하고 밝은 온기로 가득 차는 불멍의 시간. 힐링의 시간.

타닥타닥 툭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불 냄새가 코끝에 와닿는다


딸아이가 들고 온 상자를 여니 작은 벽난로 모양의 LED 등이 나온다.

전원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켜니 순식간에 벽난로가 환하게 불타오른다.  

하~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장난감 같지만 너무도 예쁘다.

작은 벽난로 모양 안에  타도 타도 그대로인 붉은 장작불과 반복하여 춤을 추며 사라지는 불꽃.

한참을 바라보니 희한하게도 불꽃 속으로 빠져든다.

가만히 손을 내밀어 불을 쬐본다. 열기가 느껴질 리 없지만 따듯한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시골 모닥불의 따스함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꽃을 날리며 피어오른다.

모닥불이 전하는 따뜻한 온기와 나무 타는 냄새, 매캐한 연기, 불타는 장작이 내는 경쾌한 소리...

아련함이 가슴 한쪽에 자리한다.

아, 이렇게 LED 벽난로를 갖고도 불멍이 되는구나!

어떻게 해서든 벽난로를 설치하고 싶어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포기한 나에게 

딸아이는 이런 선물로 위로를 해준다.

딸아이의 따듯한 마음이 모닥불의 온기에 더해져 가슴에 전해진다.


벽난로를 설치한 딸아이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옆에 세우고 상자를 선물포장해 그 앞에 장식한다.

그렇게 한껏 겨울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다 큰 딸.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벽난로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것은 이미 장난감 같은 LED 벽난로가 아니었다.

어느새 시골집 마당의 모닥불이 불꽃을 날리며 환하고 따듯하게 춤추며 피어오른다.

순식간에 거실은 모닥불의 온기와 장작 타는 냄새로 가득 차고, 

나는 다시금 따스한 불이 주는 안온함 속에 삶의 충만감에 젖어든다.

이번 겨울은 하루 종일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작은 벽난로가 있어서 

어느 해보다도 따듯한 날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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