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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Mar 07. 2022

뒷동산 마당바위

추억의 놀이터

#어린 시절의 기억 #뒷동산의 놀이터 #옛 기억의 바위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의 집 대청마루  창문으로는 그 뒷동산이 늘 그림처럼 보였다.

햇빛이 쏟아지는 날이면 어둑한 대청마루의 창밖으로 밝고 환하게 빛나던 뒷동산의 풍경.

비 오는 날은 수채화처럼, 맑게 갠 날은 인상파 화가의 풍경화처럼 

그리고 눈 내리는 날은 한 폭의 동양화인 듯한 그 풍경이 

오늘도 정답게 내 기억 속에 펼쳐진다.


그리운 그 뒷동산 나지막한 곳에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누가 일부러 갖다 놓은 것도 아닐 텐데 그 바위는 주변에 다른 돌들도 없이 

덩그마니 홀로 누워 있었다.

크기도 제법 커서 어린아이 예닐곱 명은 족히 앉을 수 있고, 

또 다듬어 놓은 듯 평평해서 드러누워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바위를 마당바위라 부르며 

그 바위에서 앉고, 눕고, 웃고, 떠들며 많은 놀이를 했었다.

엄마들은 저녁이 다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찾을 때면 제일 먼저 마당바위를 쳐다보았고

아이들도 바위에서 놀다 자신을 찾는 엄마를 발견하면 엄마가 부르기도 전에 손을 흔들며 

뛰어 내려가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집에 돌아오면 마당바위부터 살펴보았다.

혹 누군가가 있으면 가방을 던지고 뛰어가 합류를 했고 곧 여러 명이 되어 뒷동산을 헤집고 다니며 놀았다.

이름 모를 무덤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는 곳에서 풀썰매를 타고, 

억새풀 가득한 산 능선에서 뜀박질도 하면서

해가 넘어가 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어둑해질 때까지 뒷동산은 둘도 없는 자연의 놀이터였고 

마당바위는 그 중심에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뒷동산 놀이터는 다른 어린아이들이 차지했지만 

마당바위는 여전히 나의 사색처였다.

나는 혼자 뒷동산에 올라 마당바위에 누워 많은 공상을 했다.

햇살 밝고 하늘 푸른 날은 흰 뭉게구름의 요술을 보며 구름을 타고 놀았고,

새털구름이 하늘 높이 깔리는 가을이면 나는 더 높고 푸른 창공에 올라 새털구름을 쓸며 날아다녔다.

붉은 노을이 시시각각 색이 변하며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오는 것은 또 얼마나 가슴 저린 풍경이었던지.

알지 못할 허무함에 눈물을 흘리다가 검은 밤의 포근함에 위로를 받기도 했었다.


그 바위에 불던 바람은 또 어떠했던가,

바람의 맛이 계절마다, 시간마다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봄이 시작될 무렵의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바람, 여름 소낙비 전의 습기 머금어 축축하면서도 시원한 바람,

가을이면 피부를 파고들어 가슴에 스며드는 쓸쓸하고 시린 바람 

그리고 겨울에 부는 몸을 조이고 머릿속을 꿰뚫는 고드름 같이 차가운 바람.

그 모든 바람의 종류를 나는 모두 다 그 마당바위의 넓은 품 안에서 느끼고 맛보았다.

그뿐이었던가.  보슬비와 소낙비가 얼굴에 부딪힐 때의 색다른 느낌을  알았고,

그 빗물과 섞여 여러 모습으로 솟아 나오던 사춘기의 감성으로 울고, 웃고 했었던 시간들 또한 

마당바위 품에서의 일이었다.

한여름과 겨울을 제외하고는 늘 따듯하고 포근한 아랫목 같던 바위의 체온. 

등이 뜨듯하게 전해져 오던 바위의 온기.


그렇게 마당바위는 동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기까지

그들의 놀이터였고, 쉼터였으며 사색처로 오랜 세월 변함없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마당바위는 아주 긴 세월 동안 그곳에 누워 수많은 아이들의 조잘대는 이야기들과 사춘기의 고민을 들었고

가끔은 동네 어른들의 넋두리도 가슴에 담았으리라.

그리고 또한 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아래 동네의 수많은 사연들을 모두 지켜보고 

그 넓은 가슴 깊이 기록해 놓았을 것이다.


몇 해 전, 옛 동네를 지나다 보니 그 마당바위가 있던 동산에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마당바위는 아마도 산산이 쪼개져 그가 간직하고 있던 많은 사연, 오랜 시간들과 함께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더 이상 뒷동산도, 마당바위도 필요 없이 매일을 살아갈 터이다.

반세기가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그 변화가 그리 큰 충격도 아니고 그저 조금 씁쓸하고 서운힐뿐.

내 기억 속 깊은 곳의  마당바위는 지금도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 짙은 그리움이 찾아드는 날, 하얗게 빛나는 마당바위의 품에서 

봄이 오는 푸른 기운에 흠뻑 젖어

나는 한 마리 산새가 되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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