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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Feb 20. 2022

할머니와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 #이웃 할아버지 #씁쓸 코미디 한 장면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길 건너에는 제법 큰 한옥 기와집이 있었다.

그 집의 문고리가 달린 나무 대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고 드나드는 사람이 잘 눈에 띄지 않아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논과 밭, 초가집들이 많았던 1960,70년대 서울 변두리의 크지 않은 마을,

막 변화의 바람이 불어 빨간 기와를 얹은 양옥집들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동네에서 

특이하게도 제법 규모가 큰 한옥집은 그 집 하나뿐이었다.

그 집의 한 귀퉁이에는 반지하로 방을 들인 곳이 있었는데 

그 방은 길옆으로 출입문을 달아서 세를 놓았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사랑채 아닌 사랑채는 본채와는 전혀 상관없이 별도의 살림 공간이 되었다.

왜 그런 큰 한옥에 혹처럼 붙은 구조의 방을 들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 방에는 어떤 가난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늘 대문이 굳게 닫혀 있던 그 한옥집이 어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그 모퉁이의 방에 사는 가족 때문이었다.


그 집에는 어떤 할아버지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문밖에서 온종일 떠들어대곤 했다.

더 신기한 것은 그 할아버지의 며느리였다. 

무척이나 뚱뚱한 며느리는 어린 나의 눈에도 억척스러운 삶의 에너지를 가진 듯 보였다.

그 며느리는 자신의 술주정뱅이 홀시아버지에게 바가지로 물을 퍼부으며 

악을 쓰고 집 밖으로 쫓아냈고 시아버지는 쫓겨나면서 또 고래고래 며느리한테 

심한 욕을 퍼부으며 달아나곤 했다.

어떤 사연인지 체구가 왜소하고 조용한 인상의 할아버지 아들은 

본체 만 체 아무 참견도 없이 방 안으로 사라져 모습을 감추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막장 중에 그런 막장이 없는 그 싸움은 신기하게도 밤이 오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동네 아이들은 그 할아버지와 며느리의 싸움을, 

사실 싸움도 아니고 시아버지와 며느리 각자의 일방적 퍼붓기 시합이었지만,

재밌게 구경하다가 나중에는 싫증 나서 쳐다도 안 보고 지나가곤 했다.


그렇게 술에 절어서 비틀거리는 때국이 절은 옷에 지저분한 수염의 할아버지는 내 기피대상 1호였다.

혹시라도 밖에서 그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그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문밖에 나가지 않았고

하굣길이나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면 

멀리 길을 돌아 집으로 뛰어들곤 했었다.

그 할아버지가 누구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섭고 싫었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나의 할머니는 그 술주정뱅이 할아버지를 살뜰히 살피셨다.

명절 때면 음식을 골고루 챙겨 할아버지께 갖다 드리라 했고 

제사 지내고 난 후, 또 떡을 하시거나 무슨 색다른 음식을 만드셨을 때도 꼭 할아버지를 챙기셨다. 

가끔 끼니를 거르신 듯할 때는 밥과 반찬을 골고루 담아 가져다 드리도록 하셨다.

나는 그 심부름이 너무나 싫어 피하곤 했는데 그러면 할머니는 당신이 직접  

길 건너 할아버지 집에 가져다 드리곤 했었다.

나는 할머니보다 훨씬 연세가 들어 보이는 그 꾀죄죄한 할아버지를 챙기시는 할머니가 

이해도 안 되고 할머니가 할아버지 하고 마주하시는 것조차 싫어서 할머니를 못 가시게 만류하곤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불쌍하잖니."한마디만 하시곤 했다.

신기한 것은 그 술주정뱅이 할아버지가 할머니만 보면 말할 수 없이 얌전해지고, 공손해지는 것이었다.

언제 고래고래 욕을 해대었냐는 듯 아주 젊잖은 태도로 할머니께 인사하고 

시커멓게 주름진 얼굴에 웃음까지 띠는 걸 보면 희한하다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올라왔었다.


할머니는 사람들 뿐 아니라 동식물들까지도 푸근하게 믿고 따르게 하는 

아주 밝고 따듯한 에너지를 갖고 계셨다.

어려서 기르던 강아지나 사나운 수탉들도 할머니만 나타나면 반갑게 꼬리를 치고 얌전해졌으며, 

화단의 꽃들도 모두 할머니의 걸음을 따라 고개를 돌리곤 했다.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를 인자한 보살이라 부르며 좋아했고 

할머니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무정물에 까지도 당신이 가지신 따듯한 사랑을 늘 베푸셨었다. 

그렇게 천성이 자애로움으로 가득한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였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그저 내 사랑하는 할머니, 나만 사랑하는 할머니였지

할머니의 그 깊은 심중을 알지도 이해도 못했었다.

어쨌든 어린 나는 그 술주정뱅이 할아버지를 늘 챙기시는 할머니가 못마땅했고, 이해하기도 어려웠었다.


여러 해가 지나 내가 여고 졸업반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노환으로 몇 달을 누워계시다가 유명을 달리하셨다.

할머니가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계실 때 그 할아버지의 술주정은 사라져 버렸다.

고3인 나는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갔다가 저녁 늦게나 돌아오곤 해서 

그 할아버지와 맞닥뜨릴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내가 눈에 띄면 그 할아버지는 멀쩡한 모습으로 

할머니의 상태를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묻곤 했다.

평소와 같이 꾀죄죄한 외양은 변함없었지만 늘 술에 절어 지내던 전과는 다른 태도가 참 신기했다.


할머니가 그 겨울 유난히도 추웠던 1월에 돌아가셨을 때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머니처럼 믿고 따랐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하고 큰소리로 통곡을 하면서 

한참을 상청 앞에 엎드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머니라니?..."

나는 그때서야 그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연세가 한참 아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 할아버지의 겉모습 때문에 할머니보다 연세가 아주 많아 보였을 뿐 

실제로는 할머니보다 많이 어린 동생뻘 정도였던 것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나의 할머니는 참 많이 안쓰러우셨나 보다.

노인끼리의 느낌을 어린 나의 가슴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는 술주정에 성격도 괴팍하고 다 늙어서 구박받는 할아버지가 딱하고 또 처량해 

불쌍한 마음이 가득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그 이웃 할아버지는 사람이 변해 아주 조용해졌다. 

또다시 그 심한 술주정을 듣고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우리 식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 후로 그 주정뱅이 할아버지의 소식은 알지도 못했고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추측 건데 아마 그리 오래 이 세상에 머물진 못하셨을 것 같다.

지금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쫓겨나던, 때 절은 바지저고리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 뒤로 물바가지를 퍼붓던 몸집 큰 며느리의 모습은 

어떤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것은 그 옛 시절 시골 풍경 속에 가끔씩 등장하는 

그저 그러한 씁쓸한 삶의 한 장면임을 나이 들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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