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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Nov 11. 2021

오스카상

주부 넋두리

아침,

눈을 뜨자마자 주방으로 향한다.

싱크대 앞에서 하루 일이 시작된다.

어제 씻어서 포개 놓은 그릇을 챙겨 있던 자리에 정리해 넣고, 

냉장고를 열고 아침 거리를 꺼낸다.

결혼 이후 수십 년간 똑같이 반복되어 온 동작들.

잠이 덜 깨서 머리 회전이 느려도 손발의 움직임은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돌아간다.

같이 일어나도 남자는 소파로 가 티브이를 틀고, 

여자는 주방으로 가서 먹을 준비를 하고.

너무도 당연한 업무분장(?)으로 여기고 살아온 세대가 지금의 60대.


후우~~~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나온다.

반복된 일상의 중독으로 무감각해진 가슴이지만 

어느 날은 문득 서러움이 솟구쳐 올라온다.

아~~ 이젠 좀 쉬고 싶다. 나도 앉아서 누가 해주는 아침을 먹어 봤으면..,

밖으로 나가면 브런치라는 게 있지만, 

얼른 씻고 단장하고 나가서 나이프, 포크 사용하며 우아하게 아점을 먹기에는

그리 순발력도 없고, 에너지도 딸린다. 어쩌다 한 번이면 혹 모를까.


아침을 치우고, 반복되는 집안일을 계속한다.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도 돌리고, 목욕탕도 닦고. 

해도 해도 할 때뿐, 표시도 나지 않는 집안일.

그런데 귀찮고 힘들어 미뤄 놓으면 밀어 놓은 표시는 기가 막히게 요란하다.

남자들은 무슨 청소기를 매일 돌리냐고 한다.

여자들은 '“아니, 청소기 매일 안 돌리는 것을 탓해야지 왜 돌리는 것을 나무라지.” 한다.

아마도 하려면 힘들다는 표시를 하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뜻일 것이다.

이것이 주부의 일일 텐데 왜 불평을 하는 거지? 그것도 전업주부인데?

스스로에게 타박을 한다. ㅠㅠ


어느 직장에도 휴가는 있고, 정년도 있다.

그런데 이 주부라는 직업에는 휴가도, 정년도 없다. 

반복되는 그 일상이 버거워도 끝없이 지속해야 할 뿐.

가끔씩은 쉬고 싶다. 언젠가는 나도 정년하고 자유롭고 싶다.


티브이에서 오스카상 시상식을 중계한다.

윤여정 배우가 참 멋있다.

칠순이 넘어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저렇게 당당하고, 여유로울 수가 있을까?

젊은이들이 그녀처럼 늙고 싶다고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은 모두 꼰대라 노래도 부르는데 그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지 않았나.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그녀의 솔직 담백한 삶에 대한 생각과 말에서 그녀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그녀가 말한다.

정말 열심히, 절실하게 살았으며,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는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그녀는 연기자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고 그 보상으로 오스카를 받았다.

연기생활 50년에 받은 잘 살았다는 큰 칭찬이지.

그래, 그녀의 일은 연기이고 연기자로 열심히 살아 상을 받았고, 

나 같은 주부의 일은 살림 사는 것인데

이렇게 70이 넘어까지 계속 열심히 살면 식구들한테 오스카상을 받을까? ㅎㅎ

팔다리 힘이 다해 어쩔 수 없을 때까지는 해야 하는 주부라는 직업.

그녀처럼 마음의 젊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할 수 있을까?


후~~~

다시 한번 큰 숨을 내쉬며 꾀 가나서 던져놓았던 걸레를 꺼내 물에 적신다.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를 들고 인사하는 티브이 소리가 요란한 거실 

바닥을 힘내서 박박 문지르며 속으로 피식 웃는다.

"그래, 오늘을 열심히, 즐겁게 살자. 

나도 오스카를 받는 날이 있을 거야!"      


#에세이 #오스카상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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