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 #잊을 수 없는 기억
자두가 너무 먹고 싶었다.
복숭아만큼 크고 빨간, 껍질을 벗기면 과즙이 줄줄 흘러내리는 노란 속살.
그 달콤한 과육을 한입 베어 물면 가슴 가득 달콤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
다디단 그 여름 자두.
임신 초기, 입덧이 심해 너무 힘들던 어느 날,
느닷없이 단물이 뚝뚝 흐르는 자두를 먹으면 속이 가라앉을 것 같으면서
크고 탐스런 빨간 자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직 남아 있는 늦여름의 기운과 유난스러운 입덧으로
널브러져 있던 딸이 안쓰러워서 아버지가 물으셨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을까?...”
아버지 눈에는 멀리 신랑을 두고 혼자 귀국해 친정에 머물던 딸이
꼭 아픈 어린애처럼 불쌍해 보이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나는 “자두가 먹고 싶어요.” 하고 자동으로 답을 했다.
아버지는 주섬주섬 남방을 찾아 입으시고
무릎 아픈 다리를 절뚝이시며 밖으로 나가시더니
한참이 흐른 뒤에 조그만 봉투 하나를 들고 돌아오셨다.
“아무리 찾아도 철이 지나서인지 자두가 없더구나.
골목시장을 다 뒤졌는데 겨우 이거밖에 못 찾았단다.”
하시며 손에 들고 오신 종이봉투를 내미셨다.
작고 검붉은 자두 몇 알, 과즙이 뚝뚝 흐르는 주먹만 한 자두가 아니고
딱딱하고 단맛이 적은 돌자두(?)였다.
(30년이 넘은 옛날이니 어디 과일이 제철 없이 흔한 지금과 같을까.)
사뭇 미안한 표정으로 내미신 그 자두를 나는 맛있게 먹어치웠다. 아주 순식간에.
옆에서 아버지는 그 모습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 자두를 먹으면서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함께 가슴에 담았었다.
그날의 자두는 내가 그렸던 먹음직한 자두보다 더 달고 커다란 특상의 자두였다.
늘 바위 같이 무겁고 어려워 가까이하기 힘들었던 아버지,
목소리만으로도 나를 숨죽이게 하시던 분.
그 아버지의 속마음은 푹 익은 자두같이 달고도 부드러웠다.
남편은 자두철이 되면 종종 자두를 사들고 온다.
내가 아버지의 자두 얘기를 여러 번 되풀이한 효과이다.
그 시절 입덧할 때만큼 내가 자두를 먹고 싶어 하는 것도 또 좋아하는 것이 아닌데도
남편은 내 최애 과일은 자두라고 입력을 시켰나 보다.
그렇게 남편이 사 온 자두를 먹을 때면
나는 매번 아버지의 작고 딱딱한 검붉은 자두를 같이 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