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리 Nov 11. 2021

자식 모시기(2)

#엄마는 구세대 #엄마의 마음 #젊은 세대의 삶은 그들의 몫


우리 세대에는 여자들은 혼기가 차면 결혼, 시집가는 게 우선이었다.

그 혼기라는 게 20대 초중반. 

대학 4학년 졸업 무렵이면 선보는 게 주말 행사. 

맞는 짝을 골라 약혼하고, 졸업하면 바로 결혼.

그렇게 결혼하고 새색시로 모임에 나타나는 것이 정 코스라 여겼다.

그 모임에 미혼으로 나타나면 뭔가 뒤처진 느낌과 함께 

소외감 내지는 약간의 열등감을 갖게 되던 시절.

학창 시절에 공부도 좀 잘하고 뛰어나던 친구들은 대개가 학교 선생님이 되고,

특별한 재능이나 사회진출에 욕심이 없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저 결혼해서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순전히 나만의 개인적인 느낌이었는지 몰라도.)

국민학교 시절 장래의 꿈을 물었을 때 

여자 아이들의 대부분은 '현모양처'라고 답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여자들로는 당연한, 가장 좋은 꿈이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해도 스물다섯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노처녀 취급을 당했으니까.

'노처녀 취급'이란 단어가 요즘 젊은이들한테는 낯설지도 모르겠다. 

'골드미스'라는 새 단어도 있으니까.

어쨌든 미혼으로 나이 먹은 여자들을 향하던 그 따가운 시선이란!

(실제로 나와 같은 빌딩, 이름 있는 대기업에 근무하던 먼 친척뻘 언니는 

스물여섯이 되자 도저히 못 견뎌서 대충 선보고 결혼해 버렸다.)

왜 결혼도 못하고 버티고 있냐는 듯한 무언의 압박과 무슨 결함 있는 듯 여기는 

불편한 시선을 받고 견디기엔 그 시절의 사회 분위기는 여자에게 특히 가혹했다.

직장이라는 게 여자가 결혼 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관념과 

결혼을 하면 여자는 직장을 떠나 가정을 살피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불문율 같아서 감히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하려고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그 원시(?) 시대 같은 시절에 나는 30대 중반까지 버티고 직장생활을 하고 살았었다.

물론 결혼을 안 하고.


두 딸이  스물을 훌쩍 넘어 삼십을 낼모레로 바라보고 있다.

사람을 꽃에 비유하는 것, 특히 여자를 꽃에 비유하는 여러 표현들에 

조금은 비위가 상하곤 했었는데 이제 나이 들고 보니 그 느낌을 이해하게 된다.

딸아이들이 꽃봉오리 피어나듯 얼굴이며 표정이 물이 올라 활짝 피어나던 시기가 

2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그 젊음이 정말 예뻐서 쳐다보고 또 쳐다보게 되던 시간이었다.

"꽃처럼 활짝 핀다."라는 말이 맞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화장도 안 하고, 옷도 대충  챙겨 입어도 밝은 햇빛 받으면 눈부시게 빛나던 딸내미들.

젊음은 정말 아름다운 꽃이구나!

꽃이 활짝 핀 시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듯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씩 조금씩 익어간다 싶더니 싱그러운 맛이 줄어든다.

아직은 농익은 사과같이 예쁜 색을 입고 있는 나이이긴 하지만 

최고로 빛나던 그 시기는 살짝 지나간 듯하다.

사람도 역시 꽃과 마찬가지로 피고 지고,  젊고  늙고를 반복하는데

그 찬란히 빛나는 시절에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모든 생물의 본성적 흐름에는 주어진 이유가 있다는 

그런 얘기를 감히(?) 딸들에게 하지 못한다.

요즘 애들에게 어찌 “그렇게 예쁠 때 시집가서 애 낳아라. “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우주의 섭리이자 순리'라고 얘기하는 

무모하고 또 용감한 엄마가 못되기도 하고

요즘 사회 현실과도, 젊은 사람들의 사고와도 간격이 큰 꼰대라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그 젊은 빛나는 시절을 가사와 육아노동에 매달려 

내 세대처럼 허우적거리며 사는 딸들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묘하다.

나이 한 살씩 먹으며 조금씩 환한 빛이 줄어드는 딸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결혼 안 하고 열심히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가는 모습이 뿌듯하다가도

"저 이쁜 시절에 좋은 짝 만나서 귀여운 아기 키우며 알콩달콩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또 다른 행복이기도 할 텐데." 하는 마음.

어느 쪽이든 딸들에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들도 엄마의 두 마음을 감지하고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지 모를 일이고.


어쨌든 엄마의 생각은 생각이고,

나는 예전 나의 친정엄마처럼 시집가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채근하고, 채근하다 못해 싸움 싸움하는 대단한 엄마는 못되고 또 그러기도 싫다.

요즘 세상에 어디 감히 자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을까.

미래도 불확실하고, 삶이 핑크 빛이라고 하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그 팍팍해진 길을 평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카펫을 깔아줄 능력도 없으면서 

용감하게 결혼해라, 아이 낳아라 할 수 있을까.

우리 세대와는 달리 머리 회전이 좋고, 삶에 대한 계산도 빠른 요즘 세대들,

어떠한 미래를 살아나갈지는 이제 그들 자신의 몫이다.

어떠한 선택이든 후회 없기만 바라며 딸들의 삶에 끼어들지 않으려 다짐한다.

그냥 지켜보고, 마음 내고, 기도하고... 

또 감싸 안고, 놓고, 비우고...

엄마는 정~말 넓~은 바다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떡갈 고무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