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리 Dec 28. 2023

사다리에서 떨어진 관계

도예공방 선생님이 사다리에서 떨어지셨다.

마른하늘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그 일과 더불어 공방식구 모두가 함께 인연의 사다리에서 떨어져 버렸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게 흙을 만지며 웃고 울고 했던 세월이

갑자기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몇 안 되는 공방식구들은 모두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서 할 말을 잃고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도예'라는 연결고리로 만나 긴 세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모여서

작업을 같이 했으니 어쩌면 형제나 친구보다 소중했던 인연들이었다.

그 중심에 선생님이 계셨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크게 다쳐 중환자실로 실려 갔으니 그것은 공방식구 모두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선생님이 크게 다치신 것도 충격이지만 오래된 관계가 이렇게 단칼에

끝나버릴 수가 있다는 사실도 큰 충격이었다.

코로나 사태처럼 예기치 못한 일과 여러 가지 사고로

갑작스레 인연이 끝나는 일이 수도 없이 생기는 것이긴 하지만

가까운 주변에서 느닷없이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 짐작이나 했었던가.

정말로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일이다.


이제 공방식구들의 앞날은 어떻게 이어질까?

이대로 흙을 만지며 웃고, 울고 했던 긴 세월은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인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났던 그 시간들은 이제는 지속될 수 없겠지?

활기차고 젊은 에너지 가득했던 시간이 지나 얼굴에 주름이 하나 둘씩 늘어가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 그대로 정들었던 공방 식구들.

아, 이렇게 얘기치 못하게 모든 것이 마무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구나...


이런 일을 겪으니 삶이란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꼭 맞는다.

발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이어진다고 보장받을 수 없는 인생.

그래서 오늘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함이 더 자명해진다


선생님이 무사히 회복하셔도 이제는 예전처럼 활동하기는 힘들 터이니

공방을 계속 이어가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공방식구들도 새로운 모습의 관계 변화를 가져야 되겠지.

모두들 할 말을 잃은 채 식은 커피잔을 들고 멍한 머리, 휑한 가슴으로

서로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스산한 겨울바람이 마른 낙엽을 쓸며 지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방 안으로 들어온 가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