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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죽었다.

프롤로그 (2000자)

by 잉크 뭉치

아이가 죽었다.




아니, 죽은 아이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마구 헤집는다.




얼마나 지나야 이 저주에서 자유로워질까.




살면서 내쉬는 호흡의 순간순간이 괴롭고,

뜨겁게 타들어간다.




그것은 수천 개의 바늘이 꽂힌 새빨간 불덩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꿈을 꾼다.




언제나 같은, 반복되는 꿈을.




깊고 끝없는 어둠 속, 붉은 불길이 거세게 타오른다.




그 불길 속에서 웅크린 채,

몸과 영혼까지 함께 타고 있는 아이의 모습.







태아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온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아기의 울음소리.




숨이 막혀온다. 목이 조여 온다.

소리를 지르려 해도, 허공에서 부서지는 목소리.




손을 뻗어도, 눈앞에 보이는 아기를 구할 수 없다.

닿을 수 없는 거리를 향해 휘젓던 손은 결국 허공을 움켜쥔다.




더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럴 명목이 없었다.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미세한 떨림이 내 눈물을 떨궜다.




그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숨을 쉴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때, 나는 언제나처럼 깨어난다.

그게 내 일상의 반복이었다.






















꿈에서 깼다.




부릅뜬인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두운 천장.




온몸에 흘러내린 땀이 거칠게 내쉬는 숨과 맞물린다.




땀방울이 눈가를 스치고, 눈물처럼 베개를 적셨다.




이번에도 악몽이었다.




침대에서 잠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마를 만지며 흐른 땀을 손으로 걷어냈다.




창가에 반짝이는 별 하나와 달이 아직 새벽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꾼 악몽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나마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알약이 조금 도움이 되었다.




물론, 속이 메스꺼워져, 멀미하듯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도 악몽을 꾸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다.




옆 탁자엔 마시다 만 맥주 한 캔과 뜯어진 알약 봉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편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조용히 잠든 모습.




규칙적인 숨결이 희미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길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탁자 위 맥주 캔.



달빛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표면 위로,

그을린 선을 따라 은은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 시선이 멈춘 순간,

현실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또 맥주를 마시고 약을 삼켰구나...'




서서히 죄책감이 밀려왔다.




다시 남편을 바라보았다.




야근에 지쳐 늘 피곤한 얼굴, 무겁게 감긴 눈꺼풀.




그가 잠든 모습이 가슴 한구석을 저리게 했다.




나 때문에 고생만 하는 사람인데…

나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났다면 더 행복했을까.




그런 생각을 안고, 또다시 불안한 밤을 보냈다.




늘 그랬다.




걱정만 끼치고,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한 채,

이렇게 무너진 모습으로...




나는... 그런 내 자신이 싫었다.




남편과는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연을 맺었고,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이어졌다.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그저 조용하고 평온한 부부의 일상을 꿈꿨다.




그날,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뱃속의 아이가 죽었다.

그 사실을 의사는 이렇게 전했다.




“아이의 심장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시선을 머뭇거렸다.




그 눈빛에서 나는 뭔가를 읽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뱃속에서 느껴지던 태동이

내 심장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런데, 그 심장이 멈췄다고?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깐.




나는 이렇게 건강한데,

내 심장은 이렇게 뛰고 있는데,




현실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서늘함이 내 등골을 타고 내려가 밀려오던 의식을 일깨워줬다.




목소리가 안 나왔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줄기가 턱까지 내려왔다.




힘 없이 툭,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나의 손등에 떨어졌다.




차가웠다.




그 손을 어루만지는 남편의 손결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이 흐릿했다.




모든 것이 불안해졌다.




남들이 다 누리는 평온한 일상이

내게서 사라진 순간이었다.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은 어느샌가 붉게 달아오르고, 입술마저 파르륵 떨렸다




이 비참한 모습밖에 충격을 드러낼 수 없었다.




드디어, 목소리가 나왔다.




숨이 막힌 목구멍 사이로 갈라지는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병원을 나와 집까지 갔는지.



그 모든 것이 희미하게 흩어졌다.




한가롭게 앉아 보내는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자연스러움. 그것은 내 삶에 없는 사치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달라질 순간이 있다.




어느 날, 그 소년과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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