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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할머니가 운다.

미니픽션 1

by 잉크 뭉치









"설날, 어떤 이에게는 채워짐이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빈자리가 남는다고 하네요."











설날 아침,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엔 우리만 내려가니까, 할머니 섭섭하지 않게 잘 좀 챙기자.”


어머니는 핸드폰에 바빴고, 동생들은 형식적으로 "네"라고 답할 뿐이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말을 곱씹었다.



아버지의 한숨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이후 친가에서 들려오던 말다툼,

문 너머로 새어 나오던 아버지의 통화 소리가 떠올랐다.


“그냥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형, 나도 힘들어. 우리도 빚이 있는데.”


둘째 큰아빠의 사업 실패, 첫째 큰아빠와의 불화.


그전까지 가족을 붙잡고 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가는 더 이상 명절을 함께

보내지 않았다.



병원비 문제로 가족들이 다퉜고, 산소호흡기를 떼야하느냐를 두고 책임을 회피하며 서로를 원망했다.



그러나 정작 장례식 날, 부조금은 서로 더 가지려는 다툼이 벌어졌다.



그날 아버지는 깊은 탄식을 내쉬었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본 할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후 명절은 가족이 모이는 날이 아니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자, 문을 열기도 전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손수건으로 코를 풀고 계셨다.



코를 너무 자주 닦아서인지 코밑이 헐어 피가 배어 있었다. 어머니가 다가가 인사했지만, 할머니는 작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예전 같으면 친척들이 모여 왁자지껄했던 식탁. 하지만 올해는 고요했다.


“큰집 애들하고는 요새 왕래도 없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 말했다.


“다 키워봤자 소용없다! 자식들도 다 모이는 꼴 하나 못 보니, 내가 죽을 때가 된 거지.”


어머니는 서둘러 분위기를 풀려했고, 동생들은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된장은 세계유산감인데, 그러면 곤란해요!"


"내 결혼식 때까지는 건강하셔야죠!"


나는 조용히 밥을 씹으며 부엌문 위에 걸린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팔순 기념으로 찍은 사진.


그 위에는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라는 배너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할머니는 약봉지를 만지작거리며 힘없이 말했다.


“내가 더 살아서 뭐 하겠노…”


사진 속 가족들의 웃음이 한없이 공허하게 보였다. 식사 후, 가족들은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아버지는 피곤해 잠을 청했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했다. 동생들은 안방에서 숙제를 한다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만이 마루에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바닥에 누운 채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잠시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멈춰 섰다. 마루에 홀로 누운 할머니의 어깨가 너무나 작아 보였다.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식사 중 들었던 '내가 죽어야지.'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나는 발길을 돌려 할머니 곁으로 갔다.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왜 방에 안 들어가니?"


"... 그냥, 마루가 편해서요."


"그래."


나는 조용히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기척만을 느꼈다.


할머니의 손등에는 오랜 세월이 남긴 검버섯과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할머니는 원래 긴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분이었다.


늘 "다 귀찮다"며 덤덤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제는 사람이 그리운 듯했다. 마루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가 더 살아서 뭐 하겠노. 다 떠나고 나 혼자만 남았다."


차가운 바닥을 타고 몸에 전해지는 공기가 쓸쓸했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던 날이 떠올랐다.


의사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진단을 내린 직후였다. 할아버지는 산소호흡기를 낀 채 누워 계셨고, 병실 문 너머로 큰아빠와 둘째 큰아빠의 고성이 들렸다.


“네가 뭔데 아버지를 살려라, 죽여라 결정이야?”

“그럼 형이 병원비 전부 부담할 거야? 돈이 있어야 큰소리치도 치는 거야!”

“네가 매번 사업한다고 부모한테 손 벌리면서 말아먹은 건 생각도 안 해?”

"첫째 노릇~ 잘한다. 어디서 지껄여? 매달 드리는 엄마 용돈 빼돌린 걸 누구는 모를 줄 알았어? 대학도 안 나와서 잔머리만 굴리기는."


가족들은 서로를 비난했고, 할아버지는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그 후 가족들은 점점 멀어졌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할머니, 아까 밥 먹으면서 하신 말씀… 큰아빠들이랑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할머니는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그 애들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부조금 문제로 다툼이 벌어졌다고 했다.


“다들 얼마 되지도 않는 거 나눠 가지겠다고 난리 들지.”


할머니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그 속에 서러움이 묻어 있었다.


이후 명절이면 큰아빠는 선물만 보내고 얼굴을 비추지 않았고, 둘째 큰아빠는 형과 연락조차 끊었다.


“둘째는 아무래도 안 온다고 하고, 큰 놈도 연락 없어. “


할머니는 주름진 손등을 매만지며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너희라도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


그 한마디가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할머니의 한탄을 들으며, 나는 그녀가 견뎌온 세월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옛이야기를 꺼내셨고, 나는 서툰 대답을 이어갔다.


대화는 특별한 결론 없이 흘렀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할머니와 깊이 연결된 기분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사실 저, 작년에 가출한 적 있어요.”


할머니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버지와 대학 문제로 다투다 홧김에 집을 나갔다고 들려주었다.


“그때 아빠 표정이, ‘자식 키워도 내 맘 알아주는 놈 하나 없구나’ 같았어요.”


할머니가 피식 웃었다.


“푸하하, 자식 지 아비 닮는다고… 느그 아빠도 옛날에 나한테 그러더라.”


나는 놀라서 물었다.


"우리 아빠도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으로 아버지의 젊은 날을 들려주었다.


“너희 아빠도 철이 없었지. 내가 가지 말란 학과를 고집부리면서 갔으니까.”


“그랬어요?”


“그때는 나를 원망했을 거다. 그래도 결국 자기 길을 갔지.”


할머니의 말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쳤다.

나 역시 아버지가 원하는 길을 가지 않았다.


그때는 내 선택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야 아버지의 고민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머니, 우리 아빠도 한때는 속을 썩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할머니를 생각하고 계세요.”


할머니는 고요히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처음으로 진심을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는 말없이 속내를 내비쳤다.


“효도가 꼭 좋은 선물,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 안 한다.”


천천히 말을 이으셨다.


“형제가 서로 미워해도, 부모 살아계시는 동안까지만이라도 웃어라. 네 둘째 아빠, 명문대 나왔다고 자랑했지?

그게 끝까지는 못 가더라.

지 잘난 맛에 사업 벌이다 부모한테 손이나 벌리고, 명절마다 첫째를 무시했어. 좋은 대학 나왔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할머니의 손은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명절에 선물 던져놓고 가는 게 아니라, 같이 밥 한 술 뜨는 게 효도다. 곶감이니, 떡이니, 고기니 뭐니 줘 봤자, 자식들 싸우는 꼴 보고는 목구멍에 들어가겠니? 효도는 동생들 잘 챙기는 거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눈을 훔치며 등을 돌려 누우셨다.


"됐다. 이제 가라. 늦었으니 얼른 자라."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설날이 끝나고 우리가 떠나면, 할머니는 다시 텅 빈 마루에서 혼자가 될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 문틈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난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부엌에서 쌀을 씻고 계셨다.


이미 충분한 음식을 마련해 두셨을 텐데, 혹시라도 큰아빠네가 올까 봐 다시 밥을 짓고 계셨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는 들리지 않는 듯 조용히 움직였다.


그때, 주무시고 계신 줄 알았던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아.”


“예?”


"고맙구나. 할머니와 이야기 나눠줘서."


아버지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가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는데… 왜 형제들은 끝까지 서로 속을 썩이는지.”


잠시 뜸을 들이던 아버지는 조용히 덧붙였다.


"아무리 감정이 상해도, 부모를 위해서라면 참는 거다. 네가 형으로서 동생들을 잘 챙겨라."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나는 이 집안의 막내다. 나마저 형들과 싸우면, 우리 엄마만 더 힘들어지잖니."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문틈 사이로 부엌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밥을 짓고 계셨다.


어쩌면 버려질지도 모를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그릇을 집어 들었다.


"도와드릴게요.


할머니가 놀란 듯 나를 쳐다보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


그렇게 다가오는 설날 아침을 준비했다. (*)







미니픽션입니다~!!

교내 동아리에 제출 한번 해보려고 심심해서 작성해 봤어요~!


사실, 원본은 4600자 정도 되는데, 조건이

4000자 이하여서 600자 줄이느라; 엄청 고생해서

좀 변형된 것도 있드라구요.


"아~ 그래도 브런치 올리는데, 어떤 버전을 올리지?"


고민하다가 그냥 교내에 출품한 4000자짜리

올려야겠다~

요즘은 짧은 거 좋아하는 시대니 깐-!

해서 출품한 거 올렸어요!




다들 명절 잘 보내셨죠?

명절 시리즈로

한 차례 한 차례씩 올리게 되었네요 ㅋㅋ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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