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결국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 연락 이후로
시간은 다시
평소처럼 흘러갔다.
단번에 달라지는 건 없었고,
여전히 연습은 필요했고,
여전히 부족한 부분은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는 아직 아니야”라는 말만
하지 않게 되었다.
인디 게임사는
나를 한 번 쓰고 끝내지 않았다.
다시 연락이 왔고,
다시 작업이 이어졌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외주’가 아니라
‘소속 성우’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생각보다 크게 울리지 않았다.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천천히,
아주 느리게
안도감이 퍼졌다.
‘아, 내가 해온 게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구나.’
지금의 나는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학원에 다니며
공채 성우를 준비하고 있다.
발성부터 다시 배우고,
기본부터 다시 다지고,
때로는
처음보다 더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후퇴처럼 느껴지는 시간도
사실은
다음 단계를 위한
정리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확신 없는 날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결과를 좋게 봐주는 날이
언젠가는 온다.
그 날이
눈부신 무대 위일 수도 있고,
조용한 방 안의 연락 한 통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온다.
나는 아직
그날의 전부를 다 만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버텨온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지금도 나는
내 자리에서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자리에서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면,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당신의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날이 왔을 때,
아마 생각보다 조용히
당신을 부를 것이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