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시작은 늘 어둠 속에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재밌게 봤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작품은
〈앨런 웨이크〉였다.
게임이었지만,
그건 분명
하나의 소설 같았다.
소설가 앨런 웨이크
앨런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글을 잃어버린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감은 말라 있었고,
트라우마는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공포는
괴물이 아니라
더 이상 쓰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나는 그 설정이
이상할 만큼 낯설지 않았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이야기
앨런의 아내,
앨리스 웨이크는
어둠의 존재
바바라 제거에게 붙잡힌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앨런은
글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몸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
그 모습이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 강렬했다.
어둠을 아는 자의 도움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
잠수부 복장을 입은 시인
토마스 제인.
그는
바바라 제거의 연인이었고,
이미 한 번
어둠에 잠겨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앨런을 이해했고,
그래서
손을 내밀 수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했다
혼자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에서,
이미 어둠을 겪어본 사람이
말없이 길을 알려주는 장면.
그건
이야기 속 장면이었지만,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겹쳐진다.
그래서 나는 쓰게 되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때 이미
이야기의 힘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글은
누군가를 구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어둠에서 건져 올리기도 한다는 걸.
지금의 나는
이제 나는
미스터리를 쓰고,
방탈출을 만들고,
어둠과 선택을 이야기한다.
그 출발점에는
어린 시절
앨런 웨이크가 있었다.
글을 잃어버린 소설가가
글로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
결국,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이야기는
현실을 바꾸지는 못해도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였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쓴다.
어둠을 아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토마스 제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