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 먼저 지치는 마음
창고 시계를 처음 본 건
저녁이 거의 다 되었을 때였다.
나는 박스를 내려놓고 잠깐 허리를 폈다.
그때 벽 위에 붙어 있는 전자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18:47
나는 잠깐 멍하게 그 숫자를 바라봤다.
‘아직도…?’
아침에 들어온 게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는데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지나지 않았다.
팔이 묵직했다.
손바닥은 조금 얼얼했다.
박스를 계속 들다 보니
어디를 어떻게 썼는지도 잘 모르겠었다.
그때 민수가 말했다.
“거의 끝났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진짜요?”
민수는 웃었다.
“신입은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돼.”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네.”
민수는 박스를 하나 더 옮기며 말했다.
“처음 날은 더 그래.”
나는 마지막 박스를 스캔했다.
삑.
그리고 지정된 구역에 내려놓았다.
그때 멀리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여기까지!”
창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누군가는 허리를 폈고
누군가는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말했다.
“살았다.”
몇몇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음이 나왔다.
민수가 말했다.
“가자.”
우리는 작업 구역에서 빠져나왔다.
창고 밖으로 걸어 나가는 길이
아침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탈의실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작업복을 벗는 소리
사물함 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다.
“오늘 신입 어땠어?”
나는 순간 그 말이 나를 향한 것 같아서
잠깐 굳었다.
민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살아있네.”
사람들이 피식 웃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보며 말했다.
“첫날인데 표정이 괜찮은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괜찮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내일 되면 달라질 거야.”
또 웃음이 났다.
나는 사물함 앞에 서서
작업복을 벗었다.
몸이 갑자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깨가 더 아픈 것 같기도 했다.
민수가 옆에서 말했다.
“집 멀어?”
“한 시간 정도요.”
“버스?”
“네.”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버스야.”
우리는 같이 밖으로 나왔다.
해는 거의 지고 있었다.
물류센터 앞에는
여전히 트럭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아침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사람들이 조금 느리게 걸었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냥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는 잠깐 서서 건물을 바라봤다.
아침에 처음 봤던 그 거대한 건물.
그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민수가 옆에서 말했다.
“첫날 어땠어?”
나는 잠깐 생각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힘들었다.
그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오늘 하루가 다 설명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크네요.”
민수가 웃었다.
“창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민수는 건물을 한번 바라봤다.
“처음엔 다 그래.”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나도 처음 왔을 때 길 잃을 뻔했어.”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물류센터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많이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이미 몇 명 서 있었다.
민수가 말했다.
“내일 몇 시 출근이야?”
“아침 8시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7시쯤 도착해야겠네.”
나는 순간 조금 막막해졌다.
‘또…?’
몸이 이미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버스가 도착했다.
사람들이 천천히 올라탔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물류센터 건물이 점점 멀어졌다.
나는 유리창에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몸이 흔들렸다.
그때 갑자기
어깨가 욱신거렸다.
나는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내일 괜찮을까…’
버스는 도로를 따라 계속 달렸다.
창밖에는 평범한 도시 풍경이 지나갔다.
편의점
식당
불이 켜진 아파트
사람들은 평범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걸 멍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보이겠지.’
그냥 평범하게 퇴근하는 사람.
하지만 오늘 하루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박스를 몇 백 개는 들었던 것 같았다.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고
싸움도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야, 너.”
라는 말을 들었다.
버스가 큰 정류장에 멈췄다.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나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때 민수의 말이 떠올랐다.
‘버티기만 하면 돼.’
나는 그 말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굴려봤다.
버티기.
그게 정말 가능할까.
버스 창문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표정이 조금 지쳐 보였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일도
다시 그 창고로
들어가게 된다는 걸.
그리고 그때는 아직 몰랐다.
이 일이
단순히 힘든 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