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창고에서 터진 목소리

사람은 기계가 아니었다

by 하얀 오목눈이

점심 이후의 창고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금 더 느려졌고

말수도 더 줄어들었다.


밥을 먹고 나면 잠깐 힘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몸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파렛트 옆에서 박스를 하나 들어 올렸다.


삑.


스캐너 소리가 났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바코드를 찾는 것도,

스캐너를 들고 찍는 것도.


하지만 몸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깨가 묵직했다.


박스를 들고 몇 걸음 걷는데

다리가 조금 후들거렸다.


민수가 옆에서 말했다.


“괜찮냐?”


나는 억지로 웃었다.


“네. 괜찮아요.”


민수는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처음 날은 다 그래.”


그리고 박스를 하나 더 옮겼다.


창고 안에서는 여전히 같은 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삑.

삑.


그리고


삐— 삐—


지게차 경고음.


나는 박스를 하나 더 들었다.


그때였다.


창고 반대편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팀장이 아니었다.


다른 목소리였다.


굵고 거친 목소리.


“내가 그거 거기 두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반사적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한 명은 아까 점심을 같이 먹었던 그 형이었다.

3년 됐다는 직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다른 팀 직원처럼 보였다.


작업복 색이 조금 달랐다.


그 사람도 소리를 높였다.


“내 구역인데 내가 알아서 하지!”


창고 공기가 갑자기 멈춘 느낌이었다.


지게차 한 대가 속도를 줄였다.


사람들이 손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모두 그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박스를 들고 그대로 서 있었다.


민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터졌네.”


“뭐가요?”


민수는 짧게 말했다.


“싸움.”


두 사람 사이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까부터 말했잖아!”


“뭘 말했는데!”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여기 내 구역이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순간 박스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쿵.


나는 깜짝 놀랐다.


그 형이 박스를 내려친 거였다.


“적당히 해!”


창고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그 형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사람을 바보로 알아?”


다른 직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누가 바보래!”


둘 사이 거리가 거의 붙을 정도였다.


나는 순간

정말로 몸싸움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야!”


팀장의 목소리였다.


창고 끝에서 팀장이 빠르게 걸어왔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멈춰 섰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아까처럼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낮아서

더 무겁게 들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팀장이 먼저 그 형을 봤다.


“왜 그래.”


그 형은 아직 숨이 거칠었다.


“저 사람이 자꾸…”


그가 말을 하려는 순간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다.


“팀장님, 저 사람—”


“조용히 해.”


팀장이 짧게 말했다.


둘 다 입을 닫았다.


팀장은 잠깐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여기서 싸우면 뭐 달라져?”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박스를 발로 툭 밀었다.


“일이나 해.”


그 형이 말했다.


“…팀장님.”


팀장이 그를 봤다.


“저 사람 계속 제 구역에—”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네가 좀 참고 해.”


그 형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왜요?”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이 대답했다.


“왜긴 왜야.”


그리고 아주 짧게 말했다.


“일 돌아가야 하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형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떨어진 박스를 다시 집어 들었다.


창고 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삑.


스캐너 소리.


삐— 삐—


지게차 경고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민수가 나를 보며 말했다.


“봤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민수는 박스를 들며 말했다.


“여긴 가끔 저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주 싸워요?”


민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이 많잖아.”


그리고 덧붙였다.


“다들 스트레스 쌓여 있어.”


나는 창고 반대편을 바라봤다.


아까 소리를 지르던 그 형이

다시 박스를 옮기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싸울 것 같던 사람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민수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큰 거 아니야.”


나는 놀라서 물었다.


“이게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예전에 진짜 크게 터진 적 있었거든.”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어떻게요?”


민수는 잠깐 웃었다.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그리고 다시 박스를 들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창고는 여전히 거대했다.


사람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박스도 계속 쌓였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지게차보다

스캐너보다


사람의 감정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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