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첫 실수는 항상 크게 들린다

막내가 맡게 되는 일

by 하얀 오목눈이

첫 박스를 내려놓았을 때는 아직 괜찮았다.


두 번째 박스도 괜찮았다.


세 번째 박스를 들었을 때부터

어깨가 조금씩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박스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택배 박스였다.

하지만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묵직하게 손을 눌렀다.


나는 그걸 들고 창고 반대편까지 걸어갔다.


처음에는 걸음이 빨랐다.

조금이라도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 왕복을 하고 나자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창고는 생각보다 넓었다.


아까 처음 들어왔을 때도 넓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박스를 들고 걸어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멀었다.


생각보다 훨씬.


나는 박스를 내려놓고 잠깐 숨을 골랐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쉬는 거 아니야.”


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팀장이었다.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박스 쌓았으면 바로 와야지.”


“아… 네.”


나는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뛰듯이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민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다 그래.”


나는 숨을 조금 고르며 웃었다.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요.”


민수는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가 아니라 원래 힘든 거야.”


그리고 박스를 하나 집어 들며 말했다.


“여긴 막내가 제일 많이 움직여.”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입고팀의 일은 단순했다.


트럭에서 내려온 박스를 확인하고,

스캔하고,

정해진 구역으로 옮겨 쌓는 것.


단순하지만

끝이 없었다.


트럭은 계속 들어왔다.


박스도 계속 늘어났다.


한 파렛트를 정리하면

다음 파렛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 다음.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민수도 말이 없어졌다.


다들 그냥 움직였다.


그때였다.


“야.”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입고팀장이 나를 보고 있었다.


“너.”


나는 잠깐 주변을 봤다.


하지만 그가 보고 있는 건 분명 나였다.


“네?”


“스캐너 안 받았어?”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직 못 받았습니다.”


팀장은 짧게 혀를 찼다.


“그걸 왜 지금 말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아무도 스캐너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목까지 올라왔다가

그대로 다시 내려갔다.


팀장은 다른 직원에게 소리쳤다.


“스캐너 하나 줘.”


잠시 뒤 낡은 스캐너 하나가 내 손에 쥐어졌다.


손잡이가 조금 닳아 있었다.


팀장이 말했다.


“이거 누르고 바코드 찍어.”


그는 아주 빠르게 설명했다.


“삑 소리 나면 정상.”


그리고 덧붙였다.


“틀리면 다시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박스를 들고

바코드를 찾아

스캐너를 가까이 대고 버튼을 누른다.


삑.


소리가 났다.


나는 조금 안심했다.


‘생각보다 할 만한데.’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제는

박스가 아니라

속도였다.


옆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스캔을 정말 빠르게 했다.


삑.


삑.


삑.


마치 리듬처럼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바코드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고

가끔은 잘 찍히지 않았다.


“야.”


팀장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나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네!”


“왜 이렇게 느려.”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팀장은 내 손에 있는 박스를 툭 쳤다.


“그렇게 하면 오늘 안에 끝나겠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팀장은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처음이면 빨리 배우려고 해야지.”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


팀장은 돌아서며 말했다.


“속도 좀 맞춰.”


그가 멀어지자 민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나는 억지로 웃었다.


“제가 느리긴 한 것 같아요.”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리고 박스를 하나 옮기며 말했다.


“여긴 다 그렇게 말해.”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뒤

이해하게 됐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나는 박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스캐너를 들어 바코드를 찾았다.


그런데 박스 옆면에 바코드가 두 개 붙어 있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이건가?’


나는 하나를 찍었다.


삑—


하지만 소리가 조금 달랐다.


삐이익.


에러음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다시 찍었다.


삐이익.


그때였다.


“야.”


또 그 목소리였다.


팀장이었다.


그는 내 손에 있는 박스를 보더니 말했다.


“그거 아니잖아.”


나는 얼어붙었다.


그는 박스를 내 손에서 가져갔다.


그리고 다른 바코드를 가리켰다.


“이거 찍어야지.”


삑.


정상 소리가 났다.


팀장은 나를 바라봤다.


“이거 잘못 찍으면 재고 다 꼬여.”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팀장은 한숨을 짧게 쉬었다.


“하…”


그리고 창고 안을 한번 둘러봤다.


사람들이 잠깐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처음이면 물어봐.”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말투는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혼자 판단하지 말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네.”


팀장은 돌아갔다.


창고 소음이 다시 돌아왔다.


삐— 삐—


지게차가 지나갔다.


나는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때 민수가 옆에서 말했다.


“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민수는 박스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괜찮아.”


나는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들 한 번씩은 욕먹어.”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여기선 그게 인사 같은 거야.”


나는 박스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코드를 찾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봤다.


어떤 게 맞는지.


어떤 걸 찍어야 하는지.


그리고 조심스럽게 스캐너를 들었다.


삑.


정상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잠깐 듣고 있었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날 나는 아직 몰랐다.


이 창고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스캐너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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