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 다시 찾아온 밤

비 오는 횡단보도

by 하얀 오목눈이

몇 달이 흘렀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재판도 끝났고

세상도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갔다.


물류센터의 하루는

여전히 바빴다.


아침이면

트럭이 들어오고


지게차가 움직이고


박스들이

끝없이 쌓였다.


삑.


스캐너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렸다.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민수가 말했다.


“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왜.”


민수가 웃었다.


“요즘 완전 베테랑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 몇 년 했는데.”


“이제 좀 알지.”


민수가 말했다.


“처음 왔을 때 생각난다.”


“맨날 혼나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야.”


“그건 너 때문이거든.”


둘이 웃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퇴근 후 병원에 들렀다.


어머니는

재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휠체어는

아직 필요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날도

어머니를 보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용한 비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빗방울이 천천히 떨어졌다.


나는 우산을 쓰고

길을 걸었다.


도로는

젖어 있었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물소리가 났다.


촤악.


나는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신호등이

빨간불이었다.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늦은 밤이었다.


비 소리만

조용히 들렸다.


잠시 후


신호등이

바뀌었다.


초록불.


나는

천천히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빗물이

발밑에서 튀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순간이었다.


쾅.


강한 충격이

몸을 덮쳤다.


세상이

순간 뒤집혔다.


나는

무언가에 부딪히며


도로 위로

굴러 떨어졌다.


귀가

멍해졌다.


비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가쁘게 올라왔다.


“…아.”


나는

힘겹게 숨을 쉬었다.


눈앞이

흐릿했다.


가로등 불빛이

번져 보였다.


멀리서

차 한 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차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장면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뺑소니.”


입에서

작은 소리가 나왔다.


몸이

점점 차가워졌다.


비가

얼굴 위로 떨어졌다.


나는

힘을 짜내


몸을 조금

움직였다.


손이

젖은 도로를 짚었다.


미끄러웠다.


그때


머리 뒤쪽에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손을

천천히 가져갔다.


손바닥에

붉은 것이 묻었다.


피였다.


“…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이

점점 흐려졌다.


나는

주위를 봤다.


횡단보도.


젖은 도로.


그리고

흐릿한 가로등.


모든 것이

천천히 흔들렸다.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여기…’


‘어디지…’


나는

숨을 크게 쉬었다.


하지만


숨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병원에서

웃던 모습.


재활실에서

천천히 걷던 모습.


“…엄마.”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손이

조금 떨렸다.


‘안 돼.’


‘여기서…’


‘이렇게…’


나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손을

도로 위로 뻗었다.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


“사람 쓰러져 있어!”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내 시야는

점점 어두워졌다.


가로등 불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또…’


‘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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