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처음으로 불을 지펴준 날

“한번 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말

by 하얀 오목눈이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내 글을 좋아한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쓴다는 사실만 있었고,
잘 쓰는지는 늘 남의 기준에 맡겨두고 있었다.

문학 시간에 제출한 과제가 하나 있었다.
특별히 잘 썼다고 생각하지도,
오래 붙잡고 고친 글도 아니었다.
그저 그날의 마음을
그날의 문장으로 옮긴 글이었다.

며칠 뒤,
문학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다.
괜히 마음이 먼저 조용해졌다.
칭찬보다는 지적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내 글을 다시 펼쳐 보이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한번쯤은 밖으로 내보는 게 좋겠다.”

공모전이라는 단어는
그때 처음으로 현실적인 무게를 가지고 다가왔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던 말이었다.
선생님의 말은
대단한 확신도, 과장된 기대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 말고,
도전해 보는 경험으로.”

그 말은
위로에 가까웠고,
응원보다는 허락처럼 들렸다.
‘해도 된다’는 말.
‘해도 괜찮다’는 말.

그날 이후
나는 글을 쓰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혼자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쓰는 글이 아니라,
어딘가로 건너갈 수 있는 글을
처음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결과가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말을 듣기 전까지의 나와
그 말을 들은 이후의 내가
분명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믿음은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을 밝혀주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그날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건
재능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계속 써도 된다는
조용한 승인에 가까웠다.

나는 그 말을 오래 품고 왔다.
불처럼 타오르기보다는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의심이 많아질 때마다,
멈추고 싶어질 때마다
다시 불을 붙여주는 기억으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날,
그 말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쓰고 있었을까.

확실한 건 하나다.
내가 지금까지 글을 놓지 않고 있다면,
그 시작에는
한 문학 선생님의 조용한 위로와 응원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

그 불씨는
아직도
내 안에서 타고 있다.